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매경춘추] 양반정신과 첨단산업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3-02-02 13:55
조회
1967
 

출처 : https://www.mk.co.kr/news/all/4226660

 

전북은 '양반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내로라 하는 양반이 많이 살기도 했지만 고장 자체가 양반적인 품격과 태도를 갖추고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 전주 출신 소설가 최명희 선생의 '혼불'을 보면 양반을 "양반이란, 배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중략)…일일이 무엇이나 말 안해도 저절로 터득해서 어느 자리에 서든지 앉든지, 오직, 그 몸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둘레에 향내로 번져, 돌아서면서도 마음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양반의 인품이고 기품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수양이 되어야 '마음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할 수 있는지 부럽기만 하지만 그런 향내가 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고장이 전북이다. 양반들은 여간해서 자기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늘 절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양반정신이 과연 이 첨단산업과 초고속 시대에도 적합한 것인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늘 뭔가 시끌시끌하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데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북은 시끌시끌하고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곳은 아니었다. 철도가 처음 들어왔을 때 '양반고을에 쇠덩이로 만든 기차가 웬말이냐'며 기차를 가로막은 곳이 전북이었다.


그래서 문화와 예술은 발달했지만 산업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변할 때 변하지 못한 민족과 국가는 늘 역사로부터 외면당했다. 전북의 경우를 보자면 국가적으로 경공업이 크게 일어날 때 농공병진에 집중했고, 중공업 시대에 비로소 경공업이 일어났으며, 첨단산업 시대에 중공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변화를 주도한 민족은 세계사를 지배했다. 전북은 그런 점에서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계사적으로는 중국이 뻗어나오고 있고, 전북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지금 전북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양반의 정신과 진취적 기상이 합쳐지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게 잘 사는 민족이 될 것이다.




[김완주 전라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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