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김두규]묘에 맞는 혈자리가 있듯이, 인생에도 혈이 있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6-10-03 02:32
조회
2400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30/2016093001663.html





[김두규의 國運風水]



지난 8월 무덥던 여름 한낮의 일이다. 어느 큰 부잣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무덤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훨씬 전에 작고한 지아비 옆이었다. 관은 광중(壙中)에 내려졌고 흙만 덮으면 이제 이승과 영영 이별이다. 그러나 관을 흙으로 덮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술사가 나침반을 가지고 좌향(坐向)을 잡는다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참석자 몇이 더위에 쓰러져 119가 출동했다.




중국의 국부 쑨원의 무덤 전경(왼쪽)과 관이 안치된 곳(오른쪽). /김두규 제공



"삼년구지, 십년정혈(三年求地, 十年定穴)"이란 말이 있다. '터[地]를 찾는 데 삼 년이 걸린다면, 혈(穴)을 정(定)하는 데는 십 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앞의 사건도 바로 정혈(定穴) 때문에 생긴 소동이었다. 혈이란 도읍지의 경우 임금이 머물 궁궐, 일반 주택의 경우 안채, 무덤의 경우 관이 안치되는 지점과 좌향을 말한다. 정혈의 어려움을 과장하여 풍수술사들은 '三年求地, 十年定穴'을 들먹이나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김지하 시인은 "날랜 풍수, 빠른 지관은 격랑 절벽에서도 혈처를 보는 법"이라 하였다. 또 직업 풍수들만이 혈을 잡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국부 손문(孫文)이 죽자 남경(南京)의 자금산(紫禁山)으로 무덤 터가 정해졌다. 이때 혈처를 두고 '풍수대사(風水大師)'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혈을 정한 사람은 여언직(呂彦直)이라는 31세의 젊은 천재 건축사였다.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청나라 3대 황제 순치제는 "왕기가 넘치는 땅을 찾았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직접 간다. 문제는 혈처가 어디인가였다. 분분한 의견을 물리친 그는 잠시 하늘을 향해 경건히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옥패를 풀어 화살에 묶어 쏘아 올렸다. 화살이 떨어진 곳이 혈처가 되었다. 청나라 황릉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 최명희의 무덤이 있는 ‘혼불문학공원’ 안내판. /김두규 제공




술사의 의견보다는 그곳에 살아갈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여언직은 미국 유학에서 습득한 건축술을 바탕으로 생전의 손문이 좋아했음 직한 곳을 택하였다. 순치제는 자기가 묻히고 싶은 곳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이 두 사건은 혈이 단순히 땅기운이 뭉친 사물이 아니라 땅과 인간과의 관계 맺음임을 암시한다. 땅과 인간이 관계를 맺으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대지관은 서구의 많은 시인과 사상가에게서도 나타난다. 철학자 제프 말파스(호주 태즈메이니아대)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그 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감수성이 있으며, 한 번 어떤 터와 인연을 맺으면 그 터는 인간화되고(humanized) 인간화한다(humanizing)."('장소와 경험')

풍수에서 정혈은 인간과 땅 사이 인연 맺기의 정치화(精緻化)이다. 혈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아는 이가 최명희였다. 20년 동안 '혼불'이라는 장편 소설 10권을 쓰고 홀연 세상을 뜬 작가이다. '혼불'이 완성되었을 때 몸은 탈진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 쉰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역시 혈이 있을 것인즉 (…) 참다운 혈을 못 찾은 사람은 헛되이 한평생 헤맬 것이요.(…) 경치고, 정신이고, 인생이고, 결혈의 묘처(妙處)는 오직 한 군데 아니면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할 것인즉, 이 자리를 소중하게 아끼고 잘 갊아서 제 생애를 다한 집을 세워야 하리"(혼불)


'혼불'은 그녀 자신의 혈이었다. 전주에 그녀의 무덤(혼불문학공원)이 있다. 무덤 역시 그녀의 세계가 반영된 혈이다. 무덤 앞 일직선상으로 모교 전북대·생가·남원 노봉 마을('혼불'의 작중 무대)이 자리한다. 한옥마을·막걸리 골목 등으로 전주가 유명해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가는 길에 작가의 무덤도 잠시 들러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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