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이승하) 소설가의 길-이시영의 '최명희 씨를 생각함'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9-06-29 19:31
조회
1386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5) / 소설가의 길-이시영의 '최명희 씨를 생각함'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115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5) / 소설가의 길-이시영의 '최명희 씨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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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씨를 생각함 / 이시영

최명희 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서 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노트를 든 최명희 씨를 우연히 만났다.『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퉁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정희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원이야, 삼만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은빛 호각』(창비, 2003)


<해설>

소설가 최명희 씨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다. 꼭 한 번 뵌 적이 있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였다. 최명희 작가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기에 후배들 격려해주기 위해서 신문사의 초대로 그 자리에 나왔던 것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옷깃을 여미고 정좌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피를 말리며’ ‘뼈를 깎으며’ 쓴 소설이다. 이 시는, 진정한 소설가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말해준다. 작품 쓰기에 매진하면 귀신을 울린다고 두보가 말하지 않았던가. 전심전력으로 써야지 좋은 작품이 나온다. 최명희는 생활이나 호구, 명리나 이목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로지 '혼불'을 쓰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불질렀고 온몸을 불태웠다. 그래서 50대에 접어들자마자 그 몸에 암이 찾아왔던 것이다. 한국문학사를 빛낸 소설 '혼불'은 지금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최명희는 영원불멸할 진정한 소설가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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