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중잉일보] 달 빨아드리기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0-10-08 12:03
조회
1199
출처: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715737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인사할 때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는다. 물이 귀한 건조지대에 살면서 서로에게 수분을 전해 주는 습관이란다. 결혼식에서도 하객들이 삥 둘러서서 신부에게 성심성의껏 침을 뱉는다.

마사이 족의 해와 달에 대한 신화가 있다. -사소한 일로 남편인 해가 아내인 달을 때린다. 달이 덤벼들어 해의 얼굴을 할퀸다. 해는 달의 얼굴에 수많은 상처를 입히고 한쪽 눈알을 빼 버린다. 남성우월자 해는 자기의 흉한 꼴을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더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다. 눈이 부셔 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남들에게 그의 체통은 유지된다. 달은 상흔을 감추는 기색도 없이 밤하늘을 마냥 은은하게 밝혀준다.

이 신화가 마음에 든다. 인사법만큼이나 기존관념을 깬 사고방식에 매료된다. 해는 가까이하기에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거늘. 불처럼 위험천만한 해에 비하여 달은 물처럼 친근하게 당신에게 접근한다. 해의 양기와 달의 음기가 서로 상처를 주다니! 참으로 마사이족다운 발상이다.

최명희(1947~1998)의 대하소설 ‘혼(魂)불’에 흡월(吸月)이라는 한자어가 나온다. 11세기 이전부터 알려진 ‘흡월정법(吸月精法)’은 이렇게 가르친다. -양다리를 자연스럽게 벌리고 서서 양손을 들어 달을 품는 자세로 달을 응시한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달의 정기를 코로 천천히 들이마신다. (네이버에서 발췌)


흡월에 대응하는 옛 선비들의 거풍(擧風)은 또 어떤가. 심산유곡에서 성기를 대놓고 내놓아 바람과 볕을 쏘여 남성의 기를 증강하던 우리의 선조들은.

이규보(1168~1241)의 영정중월(詠井中月, 우물 속 달을 노래하다)은 달을 탐하는 중을 이렇게 읊는다. -산속 중이 달빛을 탐하여/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절에 다다르면 곧 깨달으리/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비워지는 것을. - 달빛도 공(空)이라는 메시지다. 색즉시공으로 텅 빈 달이여!

2020년 추석에 나훈아가 성대한 노래잔치를 벌였다. 군대 시절 전방 근무를 할 때 유행하던 그의 히트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련히 떠오른다. 같은 무렵 김세레나의 히트곡에서 시집간 갑순이와 화가 나서 장가간 갑돌이가 첫날 밤에 제각기 달을 보고 울던 3박자 멜로디도 울린다. 1960년대 말경 우리는 한국에서 눈물하고 달 빼놓으면 어찌 살았나 싶지.

나훈아의 ‘님 그리워’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저 달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내 님은 간 곳이 없네 ~ ♪” 이때 ‘님’은 임자, 임금님, 담임, 황진이의 ‘어른님’, SNS에서 잘 쓰이는 호칭 ‘님’과 말뿌리가 다 같다. 나훈아의 ‘님’에는 사랑하는 여인은 물론 임금님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성삼문의 “님 향한 일편단심,” 하는 바로 그 ‘님’!

그는 1982년 히트곡 ‘울긴 왜 울어’의 시작에서 “울지 마~♪” 하며 고함친다. 더는 울며불며 달에게 님 계신 곳을 물어보지 않고 그 대신 최근 곡 ‘테스 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숱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하며 슬픈 듯 한탄하듯 묻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훈아는 질문한다.

‘ask for the moon’이라는 관용어를 생각한다. 직역으로 달을 원한다는는뜻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의미다. 나훈아는 달을 원하는 것처럼 부질없이 임을 찾지는 않기로 마음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니 차라리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적 투정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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