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이기상]우주 살림살이의 대원칙, ‘나눔’ ‘비움’ ‘섬김’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0-08-17 12:44
조회
942
출처: 카톡릭프레스 2020년 8월 17일 ㅡ우주 살림살이의 대원칙, ‘나눔’ ‘비움’ ‘섬김’>


“땅은 하늘의 음덕을 거스르지 않았다. 한 번 땅에 떨어진 싹은 두말없이 품고 있다가, 욕심 없이 지표로 토해 냈고, 묵묵히 자신의 젖을 먹여 살지게 길러 주었다. 거둔 뒤에 누구의 것으로 몫 지어지든지 아무 상관없이 탐스럽게 알곡을 채워 주는 땅은, 곡식과 식물과 산과 강의 어미였다.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썩는다. 땅이 무엇을 거부하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 내버린 똥, 오줌도 땅에 스며들면 거름이 되고, 독이 올라 욕을 하며 내뱉은 침도 땅에 떨어지면 삭아서 물이 된다. 땅은 천한 것일수록 귀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준다.” (최명희, <혼불> 중에서) 


<혼불>에는 한국인의 땅에 대한 생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작가 최명희는 1995년 시카고 대 초청 강연에서 <혼불>의 집필 동기를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사물의 본질에 숨어있는 넋의 비밀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혼불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낸 것이다.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으로, 목숨이자 마음이다. 우주의 질서에 따라 자연을 섬기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 그것이 혼불인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쉬운 우리말로 표현해본다면, ‘살림살이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살림살이 정신은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배우고 따랐던 삶의 도리이자 실천 덕목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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