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장창영)최명희문학관이 있어 전주가 행복한 이유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7-05 11:38
조회
471
○ 제목: 최명희문학관이 있어 전주가 행복한 이유

○ 글쓴이: 장창영 (시인, 문학박사)

○ 출처: https://brunch.co.kr/@jusine/171

한 도시가 예술가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가장 획기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일은 작가의 이름을 붙이거나 헌사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도시가 존재하는 한 작가는 도시와 한 몸처럼 생명을 영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자체에서는 지역에 연고를 두거나 관련이 있는 예술가나 체육인 등의 이름을 내건 건축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문학관을 이야기할 때, 통상적인 문학관 외에도 경남 통영 박경리 기념관처럼 박경리 소설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곳도 등장한다. 통영 시내가 발아래 펼쳐지는 느낌이 드는 박경리 기념관은 찬찬히 돌아보다 보면 소설 <토지>에 대해 잘 모르는 이라도 저절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문학관이나 기념관이거나 이름은 다를지라도 작가를 기억하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에 최명희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은 매력적이다. 전주가 낳은 소설가 중 최명희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최명희는 전주를 ‘꽃심 지닌 땅’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주를 아끼고 사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백일장 등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던 최명희 작가는 자신의 모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별명은 ‘공포의 자주색’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교복에서 유래한 이 별명은 전국 백일장을 휩쓸었던 그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단어였다. 당시 그녀가 고등학교 때 쓴 수필 <우체부>는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하니 그녀의 작문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최명희 소설가의 인생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쓰러지는 빛>을 거쳐 다음 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서 소설 <혼불>이 당선되면서 극적으로 바뀐다. 그녀가 말 그대로 ‘혼불’이라는 단어를 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즉 혼불과 더불어 사는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추억을 더터가며 때로는 우리말 사전을 뒤적이면서 아름다운 우리 말의 흔적을 찾아 헤맸던 그녀는 마침내 10권짜리 『혼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이 책은 보석 같은 우리말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집필과정에서 악화된 지병은 그녀 생의 마지막을 갉아먹었다.

어쩌면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했을까? 그녀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자신을 송두리째 불태우며 우리 곁에서 홀연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혼불>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지나칠 정도까지 혹사하면서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혼불> 갈피마다 촘촘하게 재현해놓은 언어의 화려한 잔치였을까, 아니면 그녀가 꿈꾸던 세계였을까. 가끔 소설가 최명희를 떠올리면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진다.

전주시는 2006년 봄날, 전주 출신 최명희 소설가를 기리며 한옥마을에 ‘최명희문학관’을 만들었다. 근처에는 그녀가 살았다던 생가터와 그녀 이름을 붙인 ‘최명희길’이 있다. 최명희문학관은 다른 지역 문학관에 비해 다소 아담한 느낌이 드는 문학관이다. 규모를 내세우는 다른 문학관과 달리 최명희문학관은 한옥마을과 어우러져 단아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우선 최명희문학관의 전시공간인 ‘독락재’에 들어서면 <혼불>을 썼던 원고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원고지는 그녀가 우직하게 자신만의 집필원칙을 지키면서 적어 내려간 자기 삶의 기록이자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다. 평소 그녀는 바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새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그 절절함이 대하소설 <혼불>에 그대로 투영됨으로써 <혼불>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문학관에 전시 중인 최명희 작가가 만년필로 정갈하게 원고지를 써 내려간 육필 원고며 친필엽서와 편지봉투 너머로 그녀와 사연을 맺은 이들의 이름이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박물관 한편에는 그동안 <혼불>을 연구한 이들의 학위논문과 학술서적, 그리고 혼불문화제와 관련한 자료도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글에 대한 집념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인에게 생활고를 토로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문학세계는 <혼불>을 만나면서 만개하였다.

문학관이 단순히 작가의 자료를 모아놓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그 작가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최명희문학관은 우리의 문학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에서는 상주작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근혜 작가는 전주시민들에게 최명희 문학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최명희문학관이 한옥마을에 있다 보니까 관광객들만 찾는 장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시민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아야 하는 공간인 이유가 있어요. 최명희 작가님의 전주 정신을 많이 담은 책이 혼불이거든요. 전주 시민 스스로도 여기 관광지라는 어떤 인식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조상 우리 전주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좀 자주 들려서 최명희 작가를 다른 지역민들에게 소개하는 마음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해요!

김근혜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최명희문학관이 왜 전주 한옥마을에 있어야 하는가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문학관은 전주시민에게, 그리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단순히 문학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명희문학관이 우리에게 ‘최명희’라는 작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작가가 평생 동안 매달렸던 우리다움과 그 멋에 대해 알아가는 첫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혼불>은 일반인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책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젊은 세대들로서는 생소한 단어가 곳곳에 숨어 있는 작품을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혼불>이 우리나라의 어떤 작가들보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고 우리의 전통 정서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최명희문학관이 16년째 하고 있는 손글씨 공모전의 경우, 일반인들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만년필만을 고집했던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이 모아져서인지 손글씨 공모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핸드폰과 컴퓨터가 익숙한 세대, 그리고 손글씨를 쓰는 데 힘들어하는 세대를 아날로그의 매력적인 세계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거쳐 초등학생들이 작가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도 했다고 한다. 문학관이 단순히 문학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장르와 어울려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최명희문학관에서는 전북작가회의의 월례문학회도 열린다. 고정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거듭난 것, 이것이야말로 최명희문학관이 우리 시대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작가 최명희가 전주에 대해 그랬듯이 전주시민들은 예향의 도시라는 전주, 그 전주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과 첨단 문명이 우리 삶을 대신할 수 없듯이 때로 소중한 것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최명희 작가의 정신세계와 작품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과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 한옥마을에 자리하고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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