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전북일보 20200420] (칼럼)다시 손으로 씁니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0-04-21 10:34
조회
984
 


매체: 전북일보

날짜: 2020420

제목: 다시 손으로 씁니다

출처: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293

쓴이: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전북일보 20200420 청춘예찬.jpg

복고가 대세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를 비롯해 경제·문화·예술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고전문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출판계 역시 그 바람을 타고 있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가 문학을 포함한 전 분야를 통틀어 3월 한 달 판매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최근 개봉한 동명 영화로 입소문을 탄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1868)은 3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은 6위에 올랐다. 초판본 표지 디자인도 다시 등장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 증보판을 시작으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1795),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백석의 『사슴』(1936), 김구의 『백범일지』(1947) 등이 옛 얼굴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디지털에 밀려 희미해져 가던 아날로그는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자아와 성찰을 다루는 과거 문학작품이 인기를 얻고, 전자 화면에 손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스타일러스와 스마트펜 기술이 발달하고, 컬러링북·다이어리 북·필사시집 등이 생겨난 것은 기계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감성 때문이다. 사과문, 각서, 편지 등을 타이핑하지 않고 여전히 자필로 쓰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이다. 우리는 활자가 주지 못하는 따뜻함과 정겨움, 진정성을 손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다. 예부터 글씨는 인격을 수양하는 도구로 활용됐고, 오늘날에는 서예와 캘리그래피(멋글씨)가 느림과 정성의 미학을 뽐내며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학청년들의 글쓰기 연습에 필사가 우선으로 꼽히듯 대다수의 시인과 작가도 손으로 먼저 글을 익혔다.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연이어 쓰면서 ‘하도 팔을 굴려 먹어서 오른팔 관절이 어긋나 버렸다.’라고 밝히면서도 ‘사람이 글을 쓰는데, 육필, 손으로 쓰는 글씨가 다 없어져 버리는 시대는 얼마나 삭막한가.’라고 탄식했다. 작가 박경리는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라고 적었고, 시인 김수영은 ‘글을 쓰는 것이 천직이라 좋은 만년필을 갖고 싶은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만년필 사랑이 각별했던 소설가 최명희도 만년필과 원고지를 고집하는 이유를 ‘만년필은 몸의 일부이며 원고지를 펼치고 펜을 잡을 때 신선한 영감이 온몸에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면서, ‘소설 「혼불」을 차가운 기계에 의존해 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종이에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생각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의 안정을 준다. 특히, 필사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와 더불어 논리력과 어휘력을 키우고, 헷갈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별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모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자란다. 아이들아, 먼지의 장막 뒤에서 별들은 빛나고 있다. 아이들아, 별들은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김훈 『연필로 쓰기』 중)

여러모로 심란한 요즘, 가슴에 와 닿은 시 한 구절, 산문 한 문단을 따라 써 보며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과정이 주는 기쁨과 정성의 가치를 다시 느껴보길 바란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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