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전북중앙]'혼불 문학의 길' 따라 역사를 경험하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3-23 12:06
조회
6103
출처: http://www.j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1738

최명희 소설 '혼불' 정신 보존
청호저수지-새암바위 배경지
소설 에피소드 디오라마 전시
호남의 전통문화-풍속 체험

작가탑 혼불의 원고 표현
드라마 촬영지 유명 명소
오래된 기찻길 세월의 흔적
그시절 서민들의 삶 담겨

해마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그 발길을 다시금 이끄는 어느 한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남원 사매면인데요.

남원 사매면에는 고인이 된 최명희작가를 기리는 혼불문학관과 지금은 폐역이 되었지만 전라선 기차역으로 수많은 인생들의 이야기를 싣고 달리던 구서도역이 있습니다.

혼불문학관과 구서도역하면 최명희작가의 “혼불”이라는 장편 소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구서도역이 혼불의 배경지 중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알며 세월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서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남원 사매면의 정취를 느끼며 이제는 예스러움이 된 그 시절의 모습이 보고 싶어 남원 사매면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문화를 통해 그 옛날 그 시절을 경험해보시면 어떨까요?

# 혼불문학관

혼불문학관은 아름다운 현대 문학인 “혼불”과 최명희 작가의 문학정신을 보존하고자 2004년 10월에 개관했습니다.

혼불문학관은 전시관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밭과 조경, 그리고 ‘혼불’의 배경지 중 한 곳인 청호저수지까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집 같아”라며 혼불문학관의 첫 인상을 표현했답니다.

혼불문학관이라 하여 단순히 전시관만 있는 곳일까 생각했는데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과도 같은데요,

최명희작가가 집필하면서 휴식을 취할 때면 거닐었다는 새암바위는 물론, 혼불 배경지 중 한 곳인 청호저수지까지도 함께 위치해 혼불을 눈으로 읽는다 해도 충분한 곳입니다.

혼불문학관의 전시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라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 최명희 작가가 혼불을 집필할 때 느꼈던 절절한 심정과 고뇌, 그리고 작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혼불 문학관 전시관은 유명한 최명희 작가의 집필실과 ‘혼불’속 굵직한 에피소드를 디오라마 기법으로 연출하여 전시되어 있습니다.

혼불이 언어로 보여준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등을 디오라마 연출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아이에게는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와 풍속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최명희 작가의 혼불 원고도 볼 수 있는데 작가의 필력에서 최명희 작가의 투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나와 새암바위쪽으로 올라가봤습니다.

새암바위쪽에서 바라보는 전시관과 멀리 보이는 청호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한 바퀴를 천천히 산책한 후 소설 속에서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만한 곳’이라 하여 만들어졌다고 나오는 청호저수지에 향해봤습니다.

아이는 시원한 바람에 춤을 추는 저수지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 여기는 참 좋은 곳이야”라고 감상평을 내놓기도 했답니다.

청호저수지 옆에 자그마한 청호교를 지나 걸어가 보는데 고즈넉함이 좋아 오래 오래 천천히 거닐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혼불은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우리 조상들의 옛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아픔과 고통,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애환과 고난, 삶속에 함께 하는 우리네 문화를 전해줍니다.

혼불문학관은 이러한 혼불이라는 소설을 시각적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혼불을 읽은 후에도, 읽기 전에도 혼불문학관을 방문하여 소설을 시각적으로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구서도역 영상촬영지

혼불문학관을 나와 5분 남짓한 곳에 위치한 구서도역으로 가봤습니다.

구서도역은 4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요, 오래된 기찻길과 목조건물이 풍기는 세월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만날 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서도역은 ‘혼불’ 소설의 배경지 중 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소설 속에서 효원이 매안으로 신행올 때 내리던 곳이자, 강모가 전주로 통학하면서 이용했던 소설 속 무대입니다.

'마안, 서도가 좋아졌는등교?'

소설 속에 나오는 이 한 문장으로도 서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옆에는 작가탑과 “혼불” 소설 속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탑은 방대한 혼불 원고를 표현한 탑으로 자세히 보니 최명희 작가의 실제 원고를 재현한 탑이었습니다.

폐역에 소설 속 이야기와 관련된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를 해놓으니 서도역을 먼저 방문했다면 자연스럽게 혼불문학과도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도역은 몇 해 전 방영된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데요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서도역을 처음 만났을 것 같기도 합니다.

구서도역은 1932년 역사를 준공, 1943년 간이역으로 여객 업무가 확대되면서 근현대사를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많은 기차들이 달렸던 곳입니다.

그 곳에서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이 첫 발을 딛기도 했겠지요?

2002년 전라선이 개량공사를 하면서 2008년 역무원 무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폐역이 된 구서도역이 지금도 자신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오래된 서도역 역사 옆 하얀색 건물 두 채가 들어섰는데요

아직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모르겠지만 폐역인 목조건물과 위화감이 없어 좋았습니다.

서도역 역사 앞에 서 있으니 마치 오래 전 그 해 기차를 타고 내리던 이들이 그려집니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매력은 서도역 역사를 보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그 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구서도역을 즐깁니다.

폐역 밖으로 나오면 이제는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 기찻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요,

아이는 신나게 기찻길 위로 올라가보고 뛰어가며 자신이 기차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기찻길이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제 기차가 안다니는 것이냐는 아이의 물음에서 아이도 기찻길의 세월이 느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기찻길이 길목을 막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마냥 신기한 아이는 한참을 기찻길 위에 올라가 걸었습니다.

오래된 기찻길 옆에는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함께 있어준 나무들도 보입니다.

이 곳은 그야말로 멋진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장소이기도 한데요,

아이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을 즐기고 저는 이 기찻길을 바쁘게 내달렸던 기차들의 이야기를 그려보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서도역에서 주는 마음의 위안과 마음의 평안은 서도역이 품고 있는 그 시절의 시간들과 이야기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문학 속 이야기도, 근현대사를 살아가던 이들의 삶도 직접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지만 서도역이 말합니다.

“그렇게 살아갔고,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리라” 라고 말입니다.

우리 문화와 세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남원 사매면 마을이 오래 오래 이 모습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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