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림, 최명희를 추억하다] 동백꽃을 좋아했던 내친구, 명희

오늘은 날씨가 굉장히 따뜻해서 아침에 일찍 내려왔습니다. 혼자 산소에 가서 둘러보고 30분 동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도 좀 하고……. 오랜만에 왔어요. 자주 오고 싶고, 자주 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와지지가 않아서 친구한테는 미안한 생각도 들고 그랬었습니다.
같은 글을 매개로 작업을 하지만 저는 글을 가지고 노동을 하는 사람이고 최명희 선생은 글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최명희 문학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전에, 아마 뭐 저도 곧 세상을 떠나겠지만, 제 가족을 제외한 사람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었고 가족을 포함하더라도 가장 가까웠을 그런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산소에 가 보니까 동백꽃이 양쪽에 심어져 있었는데요. 이 친구는 동백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동백꽃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어느 순간 꽃잎으로 지지 않고 통째로 그냥 뚝 떨어져 버리잖아요. 그런 동백을 어쩌면 자기 삶하고 연관되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동백꽃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너하고 친구가 될까.”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서 그가 5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37년 간 최명희는 저한테 친구라는 이름으로 충족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친구가 필요 없었다.”라고 얘기하면 어떨까 싶은데 그 정도로 그와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최고의 감정을 나누었다고 생각됩니다. 최명희는 그 때 아주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학생이었습니다. 저한테 와서 그랬어요. “너
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너하고 친구가 될까?” 하고 저한테 물었습니다. 조금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매번 제 책상 속에 편지를 놓고 가는 겁니다. 보면 책상 속에 편지가 있었어요. 최명희 편지가.

“너는 18살 때 가장 어른이었지”
최명희한테 가장 큰 시련이 닥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5·16 무렵이라고 생각되는데요. 5·16이 일어난 다음에 아버지가 갑자기 영어(囹圄)의 몸이 되셨습니다. 어느 날 최명희는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6남매 중 장녀로 집안 기둥이 되어서 살아야하는 사람이 되었죠.
그 시기가 아마 최명희 내면을 어른스럽게 만들고 바깥으로 뻗쳤던 에너지가 안으로 스며들면서 철없는 사춘기가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갖게 되는 성숙한 소녀기를 보내게 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당시 기전여고를 가면 들어가자마자 현관에 ‘기전을 빛낸 얼굴’의 최명희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사진이 있었는데 유관순 누나처럼 굉장히 의연한, 이미 뭔가 세상살이를 다 짊어지고 가는 사람의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최명희는 어리광이라던지 또래 아이들이 가질만한 철부지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최명희 인생 중 가장 어른스러울 때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나이 먹으면서 최명희는 점점 어린애가 되었는데 나중에 제가 그랬어요. “너는 18살 때 가장 어른이고 나이가 먹을수록 어려진다.”

“이제 그만 교사생활을 접고 소설을 써라”
명희는 본인 스스로가 가족들, 특히 동생들을 전부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 욕심껏 대학을 가겠단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주에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다시 전북대학으로 오면서 모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죠. 최명희는 서울의 보성여고로 옮겨 교사생활을 했지만, 그의 청춘은 여전히 가족과 그가 그토록 원하는 문학 외 다른 것에 곁눈질할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1980년이라 생각되는데 그 때 중앙일보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 됐습니다. 원래 제목은「사소한 이야기」였는데 「쓰러지는 빛」으로 당시 문학상을 받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작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일 년 동안 제가 끊임없이 명희한테 얘기한 것이 “너는 이제 그만 교사생활을 접고 소설을 써야 된다.”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대책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있게 되었고 창간 60주년 2천만 원 장편모집소설공고가 났기 때문에 그것을 오려다가 줬어요.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어느 날 저한테 굉장히 짜증을 내면서 “너 때문에 학교도 그만 뒀는데 네가 매일 전화질을 해대면 나는 갈 데도 없고 상당히 괴롭다.”고 하면서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매일 전화해서 “너 몇 장 썼어?” 볶아댔습니다. 그러면 전혀 못 썼다고 그러고 그것이 한 두어 달 정도 하나도 못 쓰고 지나간 거예요. 제가 어느 날, 정말 소설 못 쓸려나 보다 그런 조급한 생각에 오히려 제가 다 지칠 즈음 전화를 했더니 “나 썼어.” 이렇게 얘기를 해요. “‘진짜 썼니?” 그랬더니 “썼어” 그러면서 내놓는데 15매 정도 썼어요.
그게 바로 하나도 수정이 안 된 『혼불』 첫머리였습니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15매 분량 되는 부분이 나중에 고백하는 바로는 내가 그 전날 “너 이제 정말 안 쓰면 나랑 절교해야 돼!” 이렇게 심한 말을 했더니 ‘이 친구가 정말로 화났구나. 이번에도 안 썼다고 그러면 절교 당하겠구나’ 싶어서 전화 끊고서 3시간 만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5시에 간다고 했더니 전화 끊고 그로부터 3시간 동안 쓴 것이 그 분량이라고 나중에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혼불』은 그 뒤 어느 때는 울면서 밤을 꼴딱 새고, 어느 때는 새벽 한 세네시 경에도 전화가 왔어요.
그러면서 소설을 써서 이듬해에 81년에 당선이 됐습니다.

“제발 나한테 쓰라고 하지마.”
저는 『혼불』이 당선되고 난 다음 최명희 인생은 꽃 뿌려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활개를 치며 활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어쩌면 『혼불』을 쓴 이후 17년이 가장 힘들고 괴로운 가시밭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웬일인지 『혼불』 1부를 끝내놓고 하나도 못 쓰는 날들이 많았고, 글을 못 쓰는 동안 그가 한 일이 없으니까 수입도 없었죠. 힘들게 살면서도 만나면 항상 밝고 위안을 주는 표정으로 자기의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제가 맨날 “너는 소설 써야 돼. 소설 쓰지 않으면 넌 안 돼” 라고 얘기하면 “제발 나한테 쓰라고 하지 마라. 쓰라는 얘기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왜 못 쓰냐고 그러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그래요.
17년 동안 내내 앉아서 전 10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못 쓰는 시간, 고통의 시간이 더 길었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왜 작품을 못 쓰고 있는지, 내면에 뭔가『혼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의 교감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어떤 시간을 기다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치와 값을 다 알아내던 사람
꽃피는 봄날 흐드러지게 핀, 그런 봄이었는데요. 금산사, 정읍의 내장사, 고창 선운사 다음 백양사 전라도의 사찰을 함께 일주일동안 순례를 한 적이 있었어요. 선운사에 갔더니 아름드리 동백꽃들이,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는데 동백꽃이 동백나무 밑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어요. 그거 보면서 최명희는 환호성을 지르고 일어나서 나올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 동백들 틈 속, 눈곱재기 만해서 보여지지도 않을,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의 조그만 보라색 꽃들이 자잘하게 피어 있었어요. 이렇게 들여다봤습니다. 꽃이 어쩌면, 이렇게 조그만 꽃이, 조그만 대로의 우주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최명희는 아주 감탄을 했어요.
꽃이 크다고 해서 그 꽃의 아름다움이나 그 꽃의 모양이나 꽃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다 가지는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그 때 저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그 꽃을 보고 한없이 감탄하고 사소한, 이를테면 발밑에 밟아서 없애버려도 될 그 꽃을 보고도 그것에 홀려서 일어나질 못하고 거기서 그냥 한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그만 가자. 됐어. 그만 가자. 이제 다 봤어. 가자. 이제 됐네’
아무리 일어나게 하려고 해도 그 꽃을 보고 안 일어나는 거예요. 최명희는 이런 사물에 대한 다른 사람이 발견해내지 못한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값을 다 알아내고, 알아주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송강을 만났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애.”
송강이 청산별곡을 쓴 식영정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사람들 다 나와 있는데도 최명희는 문고리를 쥐고 거기서 일어날 줄 모르고 앉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만큼 갔다가 다시 나와서 “안가? 가자”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만 기다려봐”하고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한참을 기다렸다 가 봤더니 울고 있었어요. 식영정의 문고리를 쥐고. 왜 우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송강을 만났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송강이”
그 때는 말이 안돼서 그냥 넘기고 지나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송강을 만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어떤 영적인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당시 최명희 모습은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도 제가 최명희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이런 사물을 보고도 쉽게 넘어가고 지나치는 적이 없었단 거예요. 컵 하나를 봐도 저희는 그냥 ‘컵이구나’ 이렇게 보는데 이 친구는 컵을 수도 없이 돌려서 보고 위를 보고 내려다보고 또 이쪽에서 보고 저쪽에서 보고 그래요. 그에게 있어 사물은 그냥 단순한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최명희의 엄청난 집중력과 사고력과 그가 가지는 내면의 숱한 삶의 이야기들이 사소한 물건과 하찮은 문자에도 다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최명희는 그것을 영롱한 빛깔과 색채로 빚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말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최명희는 말도 맛나게 하고 같이 있으면 끊임없이 사람을 황홀하게 끌어당기고 매혹시키는 사람이었어요.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 중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이를테면 외모라던지 성격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사람을 매혹시킨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명희가 매혹시킨 것은 말이었습니다, 우리말. 말을 듣고 있으면 한국어가 우리 입에서 말이 될 수 있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친구하고 얘기하고 있는데도 완전히 홀려버려서 얘기를 듣다보면 일어나기가 싫어요. 아침부터 이야기하다보면 무슨 얘긴가 계속해서 들어야 할 것 같고.
누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읽는 것보다 그 친구가 읽어서 얘기해주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어요. 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기 전에 이야기로 다 들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최명희한테 이야기 듣는 것이 진짜 소설 읽는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어요. 그런 재능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꽃피면 우리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가자.”
제가 썼던 ‘은실이’가 한 70회 정도에 끝났는데요. 50회 가까울 때에 세상을 떠난 것 같아요. 수요일이 마감인데 월요일 날 전화가 왔습니다. 잠깐 와서 동생 분이 전화 와 가지고 잠깐 정신이 났다고. 그 동안 제가 몇 번 가봤는데 중환자실에 전부 위생복을 착용하고 들어가면 혼수상태니까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누워만 있었어요. 근데 정신이 나서 사람들을 알아본다고 그래서 일하다 말고 뛰어갔습니다. 뛰어갔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사람을 알아보더라구요. 제가 갔더니 제 손을 딱 잡아요. 뭐를 주렁주렁 많이 막 달고 있으니까 말은 안 나오고. 그러더니 동생한테 볼펜하고 종이를 달라고. 갔다 줬더니 거기다 썼어요.
‘꽃피면 우리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가자.’
나중에 보면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 이런 글도 남겼지만 그때까지도 최명희는 저한테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꽃피면 우리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가자’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돌아왔는데 이틀 후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발병했을 때 저한테 한 얘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상하게 점보기를 좋아했던 명희가 “쉰 두 살이면 누울 곳이 없대. 인생이 다 끝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린단다, 내가. 굉장한 상을 받게 된대”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혼불 끝나고 노벨문학상 받는 거 아니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 나 이거 노벨문학상 감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 쉰 두 살에 본인이 얘기하는 것 같은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없는 곳으로 사실은 갔어요. “더 이상의 어떤 고통도 나한테는 없대” 이렇게는 이야기한 곳으로 갔습니다. 쉰 두 살에.
벌써 8년이 돼서 제가 이렇게 최명희를 추억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시간이 왔는데요. 다행히 전주와 남원이 최명희를 기리고 아껴주고 있습니다. 제가 생전에 최명희하고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야, 예수도 자기가 난 마을에서는 안 알아줬어. 가까운 곳에서 알아주는 것이 제일 힘들어”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최명희가 난 고장에서 그 사람을 기려주고 아껴주고 영원히 이름으로, 최명희 문학관 이름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게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하구요.
저는 한 사람의 친구를 가짐으로 해서 제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릴 수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린 것 같습니다. 그가 있어서, 또 떠난 다음에도 그를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