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줌인] 혼불문학제 발제자 서지문 교수
최명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5년. 최명희 소설 ‘혼불’의 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혼불문학제’가 11일 오전10시 전북대문화관 건지아트홀에서 세번째 걸음을 내딛는다. 올해 혼불학술상은 박현선씨(숭실대 강사)의 ‘최명희 소설연구’가 선정됐고, 청년문학상은 시부문 정 훈씨(전남대 2년)·유인선양(경기 과천여고 1년), 소설부문은 김보현씨(서강대 1년)·전아리양(이화여고 2년)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올 학술대회 주제는 ‘혼불의 언어’. 서지문 교수(고려대 영문학)를 비롯 김흥수 교수(국민대 국어학), 윤평현 교수(전남대 국어학), 박일용 교수(홍익대 고전문학), 이태영 교수(전북대 국어학), 홍윤표 교수(연세대 국어학) 등의 발제가 이어진다.
이들 발제자중 특히 서지문 교수는 최명희 선생과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을 듣고 서 교수께 메일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선선히 응해줬다. 서 교수는 “1993년 정초에 처음 최명희 선생을 만났고, 이후 1년에 서너차례 만남을 가졌었다”며 “소설 혼불의 탄생은 20C 후반 한국문단의 최대경사”라고 꼽았다.
혼불문학제를 사흘 앞둔 8일, 서 교수가 말하는 최명희와 혼불에 대해 정리한다.
-최명희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3년 정초로 기억한다. 그 시절 동아일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읽지 못했지만, ‘혼불’이라는 소설에 대해 막연히 알고는 있었다. 와중에 한길사에서 4권으로 나온 책을 독파하고 최 선생께 전화해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자주 만남을 가졌나.
“글쎄, 1년에 서너번 정도될까. 당시 최 선생이 강남에 살고 있어서 강북에 있는 내 여건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최 선생이 글쓰다 힘들 때 가끔 전화를 해오곤 해서 통화는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최명희 선생은 어떤 분이었나.
“모든 면에서 정말 ‘정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부모의 헌신을 능가하는 것이었고, 한번 스쳐가는 인연에도 성의를 다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했다. 선생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끔 ‘불후의 명작을 써야 할 작가가 시간을 소모한다’고 질책하기도 했었다.”
-혼불을 처음 읽었던 소감은.
“몇 장을 읽기도 전에 ‘나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타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어본 일은 없지만, 문학작품을 통해 이런 느낌을 가져본 것도 처음이었다.”
-혼불과 관련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 작가는 하루 밥 한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독자가 작가를 만나 ‘청암부인처럼 우아하게 모시옷을 차려입고 집필했을 것으로 상상했었다’는 소리를 했다니, ‘대체 어떻게 읽었기에’하고 속으로 분개한 적이 있었다.”
-혼불을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혼불의 탄생은 20C후반 한국문단의 최대경사다. 최명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작품이다. 민족의 혼을 되찾아 주는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경사다.”
-이번 세미나 주제가 ‘혼불의 언어’인데.
“맞다. 혼불을 읽으면서 처음 맞딱뜨린 충격이 작가의 언어구사력이었다. 첫권 첫장에 나오는 대나무 숲의 묘사는 토머스 하디의 ‘귀향’에 압도할 만한 것이었다. 아니 하디의 묘사보다 훨씬 신비롭고 애절하고 세밀했다. 단언컨데 언어를 이토록 내밀하고 감미롭고 영롱하게 구사한 작가는 일찍이 동서고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최명희는 현대인이 언어를 화폐처럼 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빌자면 현대인은 말을 그 교환가치만 보장된다면 찢고 훼손해도 무방한 증서로 생각한다는 말일 것이다. 최명희는 언어를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고, 혼불을 통해 순결한 모국어를 재생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노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혼불의 언어성에 강철심장을 가진 독자라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혼불’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아직은 예단할 수 없다. 이 작품 하나로 한국문단의 격이 한단계 높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작품이라서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다만 젊은 작가들에게 사표가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김영애 기자 young@jj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