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박혜란에세이]사랑스런 사람 최명희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08-01-11 16:33
조회
2624
 
[박혜란에세이]사랑스런 사람 최명희

 

5년 전 중국 길림성 연길, 희뿌연 하늘이 가슴을 짓누


르던 초가을의 어느 날 그가 연변대학교 부근 나의 아파
트를 찾아왔다.
내가 연길로 오기 몇 달전 우리는 내 친구이며 동시에
그의 친구의 친구 집에서 우연히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연길 체류계획을 들으면서 그는 매우 반색을
했다. 자신도 얼마 후 작품 취재차 만주를 방문할 예정
이니 그 때 만나면 정말 재미있겠다면서. 그리고 그 날
그는 나와 다른 세 친구에게 활원운동을 가르쳐 주었다.
활원운동이란 일종의 기체조 같은 것으로 호흡을 깊게
하면서 사지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운동이었다. 분명하
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그 때까
지 소용돌이치던 내 마음은 어느 새 깊은 호수처럼 잠잠
해졌고 뻣뻣하기만 했던 사지가 마치 문어가 된 것처럼
부드러워졌다.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사지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겼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아주
듣기 좋은 말로 나를 추켜 주었다.


'혼불'이 동아일보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난 그를 알았
었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을 읽으면서 난 감동을 넘어
기가 죽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의 여성이었음에도
문체나 내용에 처음부터 대가의 풍모를 풍겼다. 내가 존
경해온 박경리 선생이나 박완서 선생, 그 분들이 단지
나보다 훨씬 어른이기 때문에 존경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작가 최명희를 처음부터 존경했
다.

활원운동의 원리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그의 단아한 모
습을 보면서 내게 떠오른 생각은 단지 “과연!”이란 한
마디 이외엔 없었다. 저런 사람이니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두 달 예정으로 만주취재를 온 그는 몹시도 지쳐 보였
다. 이미 한 달 동안 주인공의 자취를 따라서 여러 곳을
다닌 뒤였는데 당시의 중국여건상 여행자체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았다.

‘손톱 끝에 스쳐도 생채기가 남는 명주필 같은 마음’
을 지닌 이 작가가 그 동안 받았을 숱한 상처를 나는 묻
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밟혀도 밟혀도 밟히는 줄 모
르고’ 잘도 벙글대는 쇠심줄 같은 나도 지난 6개월 동
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던가.
나는 갑자기 큰언니가 되어서 그를 보듬어 안았다. 우리
는 스무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떠들어 대고 먹어 대고
웃어 대었다. 된장찌개와 상추쌈 그리고 설익은 배추김
치와 싸구려 중국 포도주로 몇 끼를 포식하며 계속 떠들
어 댔다.

실향민 부부의 맏딸로 태어나 기자, 전업주부, 여성학자
로 살면서 나이 마흔 여덟에 덜컥 만주에 온 털털한 여
자와 전라도 양반가문의 맏딸로 국어선생을 하다가 소설
가로 다시 태어나 자기 소설의 주인공을 뒤따라 온 마흔
일곱의 단아한 여자가 만났으니 그 이야기 보따리가 얼
마나 컸을까.

처음에는 서로 만주에 와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면서 눈
물을 흘렸지만 이내 우리는 이런 뜻밖의 만남에 서로 너
무 행복해서 웃느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살아온 이야
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너무 성의없이 사는 게 아닐
까, 너무 장난처럼 살아온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귀국하기 전 '혼불' 4권을 내가 설립에 관여했던
연변대 부녀연구중심에 기증했다. 그 해 겨울 잠시 귀국
한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화들
짝 반가와 하면서 그 길로 우리 집으로 달려 왔다.

내가 '또 하나의 문화'에 썼던 고정희 추모 글을 봤
다면서 그는 마치 유언처럼 말했었다. 그렇게 정성스럽
게 작품을 읽고 써 주는 친구가 있는 고 정희가 부럽다.
내 글은 세계가 다르지만 내 글 속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사랑할 만한 여자들이 아니냐고.
워낙 농담같은 말 밖에 못하는 나는 큰 소리로 받았다.
그래 네가 죽으면 내가 써 줄께.
그리고 난 중국으로 돌아갔고 그 해 봄 귀국해서도 무에
그리 바쁜지 그를 소식으로만 보고 들었지, 다시 또 만
나지 못하고 살았는데, 엊그제 그는 아주 영영 세상을
떠났다. 사랑스런 사람.

 

506호 [오피니언] (199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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