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9/20)_ 소담하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6-17 09:53
조회
645
‘소담하다’는 생김새가 탐스럽거나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소설 「혼불」에서 열 번도 넘게 나온다.
①: 금방이라도 좌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질 것처럼 소담한 구슬 무더기가 꽃밭이라도 되는가, 실낱같이 가냘픈 가지 끝에서 청강석 나비가 날개를 하염없이 떨고 있다. (「혼불」)
②별이 스러져 숨은 자리에 박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어 소담하게 보인다. (「혼불」)
③맨 뒷줄에는 먹과 벼루, 책, 그 옆에 청실 홍실이 나란하고, 가운데줄에는 붓이며 돈, 그리고 활과 무명필이 소담하게 혹은 날렵하게 놓였는데, 아기의 손이 닿기 좋은 앞줄에는 과일, 국수, 쌀, 떡 등의 음식이 탐스러웠다. (「혼불」)
④너풀 너풀 내리던 눈송이들은 점점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길바닥에 쌓인다. 첫눈치고는 소담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혼불」)
⑤영산백(映山白) 흰 꽃이 투명한 모시빛으로 소담스럽게 핀 암자의 뒷마당 그늘진 곳에서, 놋대야만한 단지 뚜껑에다 연분홍 물감을 풀어 놓고, 한 장 한 장 백지를 담가 흔들며 물을 들이고 있던 호성암 암주(庵主) 스님 도환(道環)은, 인기척을 듣고 문득 고개를 돌린다. (「혼불」)
⑥정교한 솜씨를 다하여 곱게 물들인 한지를 접어서, 실금까지 조롬조롬 잡은 꽃잎이 비늘인 양 낱낱이 층을 이루며 박히어, 동그랗고 소담스러운 숭어리로 피어오른 연꽃 등은 진분홍 · 연분홍 · 병아리색, 선연도 하다. (「혼불」)
⑦저녁밥을 지을 때, 하루를 못 이긴 그 꽃은 이미 시들고. 아침에는 여린 분홍 고운 꽃 소담소담 물오르게 물고 있던 꽃가지가, 날 저물어 늙은 뼈처럼 적막한 등잔 불빛에 여읜 그림자 드리우고 있는 정경이, 어린 강실이한테도 그처럼 오류골댁 등허리마저 고적하게 비치도록 하였는지도 모른다. (「혼불」)
⑧그 봉숭아 꽃밭 옆구리에는 분꽃도 피어났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시집가는 새각시 족두리 수술 같은 연분홍 족두리꽃이며 진노랑에 당홍색 백일홍들이 소담스러운 싸리와 함께 만발하여. (「혼불」)
‘소담하다’를 쓴 단락에서 돋보이는 문장은 장독대와 그 곁에 핀 꽃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세월이 묵은 담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율촌댁의 장독대는 마당보다 두어 단 높았다. 자잘하고 반드러운 돌자갈을 쌓아 도도록이 채운 장독대에 즐비한 독아지와 항아리, 단지들이 기우는 석양의 붉은 빛을 받아 서글프고 정갈하게 타오른다.
⑨여름날이었다면 이런 시간, 장독대를 에워싸고 피어나는 맨드라미의 선홍색 꽃벼슬이며, 흰 무리 · 다홍 무리 봉숭아꽃들, 그리고 옥잠화의 흰 비녀가 주황에 물들 것이지만. 분꽃의 꽃분홍과 흰 꽃들도 저만큼 저녁을 알리며 소담하고 은성하게 피어날 것이지만. (「혼불」)
지금은 꽃씨가 숨은 껍질이 땅 속에 묻힌 채 터지지 못하고 있으니, 노을은 저 홀로 주황의 몸을 풀어 어스름에 섞이면서 장독대를 어루만져 내려앉는다. 그 장독대에 선 네 여인의 흰 옷과 검은 머릿결 갈피로도 노을은 내려앉는다. 그림자도 없이.
율촌댁이 행주로 몇 번이나 닦아낸 독의 넉넉하고 우람한 몸체에서는, 사양(斜陽)에 차돌같이 매끄럽고 견고한 광택이 위엄있게 돋아났다. 그리고 그 불룩한 가슴 한복판에 거꾸로 붙은 버선본의 커다란 발이 저녁 하늘을 밟고 있는 모양은, 확실히 이 장독이 그 어떤 거대한 힘으로 이 네 여인을 거느리고도 남는, 더 큰 여인인 것을 느끼게 하였다. 저 버선본만한 발을 가진, 하늘을 밟는 여인.
그는 누구일까.
대대로 이 집안을 지켜오며 이 독에 장을 담그고, 그 장으로 식구들의 밥을 먹이며, 살로 가고 뼈로 가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던 가모(家母)들의 혼(魂)과 그 손들. 혹은 그 손에 묻은 세상들. 아니면 꿈.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
⑩여름이 시작되면 우리 집에 자주, 파랑, 붉은색 수국이 소담하게 피어난다. 바람이 불면 고깔모자를 쓴 수국 농악대가 마당에서 신명 나게 고갯짓을 한다. (글: 김도수·시인)
*김도수_ 2006년 『사람의 깊이』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시집 『진뫼로 간다』, 동시집 『콩밭에 물똥』을 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전체 115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영상] 2023년 영상으로 만나는 최명희문학관 (1월~9월)
최명희문학관
|
2023.02.02
|
추천 0
|
조회 832
|
최명희문학관 | 2023.02.02 | 0 | 832 |
114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⑦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 강태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22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22 |
113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⑥ 욕망의 화신, 옹구네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65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65 |
112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⑤ 분가루 같은 여인, 강실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34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34 |
111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④ 절대종부, 효원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39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39 |
110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③ 그물에 걸리지 않는 인생을 꿈꾸는, 강모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23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23 |
109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② 대추씨 같이 단단하고 깐깐한, 이기채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180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180 |
108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속 인물① 진정한 어른, 청암부인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추천 0
|
조회 263
|
최명희문학관 | 2023.09.13 | 0 | 263 |
107 |
(영상과 대본) 어찌 그리 넘으 속을 잘 안당가?
최명희문학관
|
2023.08.17
|
추천 0
|
조회 186
|
최명희문학관 | 2023.08.17 | 0 | 186 |
106 |
(영상과 대본) 귀신사 홀어미다리와 이서 효자다리
최명희문학관
|
2023.08.17
|
추천 0
|
조회 179
|
최명희문학관 | 2023.08.17 | 0 | 179 |
105 |
[이미지]소설 「혼불」 가계도입니다
최명희문학관
|
2023.05.07
|
추천 0
|
조회 979
|
최명희문학관 | 2023.05.07 | 0 | 979 |
104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10권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추천 0
|
조회 453
|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0 | 453 |
103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9권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추천 0
|
조회 329
|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0 | 329 |
102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8권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추천 0
|
조회 374
|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0 | 374 |
101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7권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추천 0
|
조회 296
|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0 | 296 |
100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6권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추천 0
|
조회 324
|
최명희문학관 | 2023.05.03 | 0 | 324 |
99 |
[귀한 자료] 『전북인』(1991년 4월)에 실린 최명희 작가 인터뷰
최명희문학관
|
2023.03.14
|
추천 0
|
조회 391
|
최명희문학관 | 2023.03.14 | 0 | 391 |
98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5권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추천 0
|
조회 440
|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0 | 440 |
97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4권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추천 0
|
조회 431
|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0 | 431 |
96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3권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추천 0
|
조회 452
|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0 | 452 |
95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2권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추천 0
|
조회 584
|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0 | 584 |
94 |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1권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추천 0
|
조회 861
|
최명희문학관 | 2023.03.08 | 0 | 861 |
93 |
(글) 전북대학교 국문과 학생들이 소개한 최명희와 최명희문학관
최명희문학관
|
2023.03.04
|
추천 0
|
조회 591
|
최명희문학관 | 2023.03.04 | 0 | 591 |
92 |
(글)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권합니다 002호
최명희문학관
|
2023.02.01
|
추천 0
|
조회 543
|
최명희문학관 | 2023.02.01 | 0 | 543 |
91 |
[글 영상] 소설 「혼불」 속 윷점 풀이
최명희문학관
|
2023.01.20
|
추천 0
|
조회 579
|
최명희문학관 | 2023.01.20 | 0 | 579 |
90 |
(글)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권합니다 001호
최명희문학관
|
2023.01.05
|
추천 0
|
조회 436
|
최명희문학관 | 2023.01.05 | 0 | 4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