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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9/20)_ 소담하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6-17 09:53
조회
19


‘소담하다’는 생김새가 탐스럽거나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소설 「혼불」에서 열 번도 넘게 나온다.

①: 금방이라도 좌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질 것처럼 소담한 구슬 무더기가 꽃밭이라도 되는가, 실낱같이 가냘픈 가지 끝에서 청강석 나비가 날개를 하염없이 떨고 있다. (「혼불」)

②별이 스러져 숨은 자리에 박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어 소담하게 보인다. (「혼불」)

③맨 뒷줄에는 먹과 벼루, 책, 그 옆에 청실 홍실이 나란하고, 가운데줄에는 붓이며 돈, 그리고 활과 무명필이 소담하게 혹은 날렵하게 놓였는데, 아기의 손이 닿기 좋은 앞줄에는 과일, 국수, 쌀, 떡 등의 음식이 탐스러웠다. (「혼불」)

④너풀 너풀 내리던 눈송이들은 점점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길바닥에 쌓인다. 첫눈치고는 소담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혼불」)

⑤영산백(映山白) 흰 꽃이 투명한 모시빛으로 소담스럽게 핀 암자의 뒷마당 그늘진 곳에서, 놋대야만한 단지 뚜껑에다 연분홍 물감을 풀어 놓고, 한 장 한 장 백지를 담가 흔들며 물을 들이고 있던 호성암 암주(庵主) 스님 도환(道環)은, 인기척을 듣고 문득 고개를 돌린다. (「혼불」)

⑥정교한 솜씨를 다하여 곱게 물들인 한지를 접어서, 실금까지 조롬조롬 잡은 꽃잎이 비늘인 양 낱낱이 층을 이루며 박히어, 동그랗고 소담스러운 숭어리로 피어오른 연꽃 등은 진분홍 · 연분홍 · 병아리색, 선연도 하다. (「혼불」)

⑦저녁밥을 지을 때, 하루를 못 이긴 그 꽃은 이미 시들고. 아침에는 여린 분홍 고운 꽃 소담소담 물오르게 물고 있던 꽃가지가, 날 저물어 늙은 뼈처럼 적막한 등잔 불빛에 여읜 그림자 드리우고 있는 정경이, 어린 강실이한테도 그처럼 오류골댁 등허리마저 고적하게 비치도록 하였는지도 모른다. (「혼불」)

⑧그 봉숭아 꽃밭 옆구리에는 분꽃도 피어났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시집가는 새각시 족두리 수술 같은 연분홍 족두리꽃이며 진노랑에 당홍색 백일홍들이 소담스러운 싸리와 함께 만발하여. (「혼불」)

‘소담하다’를 쓴 단락에서 돋보이는 문장은 장독대와 그 곁에 핀 꽃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세월이 묵은 담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율촌댁의 장독대는 마당보다 두어 단 높았다. 자잘하고 반드러운 돌자갈을 쌓아 도도록이 채운 장독대에 즐비한 독아지와 항아리, 단지들이 기우는 석양의 붉은 빛을 받아 서글프고 정갈하게 타오른다.

⑨여름날이었다면 이런 시간, 장독대를 에워싸고 피어나는 맨드라미의 선홍색 꽃벼슬이며, 흰 무리 · 다홍 무리 봉숭아꽃들, 그리고 옥잠화의 흰 비녀가 주황에 물들 것이지만. 분꽃의 꽃분홍과 흰 꽃들도 저만큼 저녁을 알리며 소담하고 은성하게 피어날 것이지만. (「혼불」)

지금은 꽃씨가 숨은 껍질이 땅 속에 묻힌 채 터지지 못하고 있으니, 노을은 저 홀로 주황의 몸을 풀어 어스름에 섞이면서 장독대를 어루만져 내려앉는다. 그 장독대에 선 네 여인의 흰 옷과 검은 머릿결 갈피로도 노을은 내려앉는다. 그림자도 없이.

율촌댁이 행주로 몇 번이나 닦아낸 독의 넉넉하고 우람한 몸체에서는, 사양(斜陽)에 차돌같이 매끄럽고 견고한 광택이 위엄있게 돋아났다. 그리고 그 불룩한 가슴 한복판에 거꾸로 붙은 버선본의 커다란 발이 저녁 하늘을 밟고 있는 모양은, 확실히 이 장독이 그 어떤 거대한 힘으로 이 네 여인을 거느리고도 남는, 더 큰 여인인 것을 느끼게 하였다. 저 버선본만한 발을 가진, 하늘을 밟는 여인.

그는 누구일까.

대대로 이 집안을 지켜오며 이 독에 장을 담그고, 그 장으로 식구들의 밥을 먹이며, 살로 가고 뼈로 가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던 가모(家母)들의 혼(魂)과 그 손들. 혹은 그 손에 묻은 세상들. 아니면 꿈.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

⑩여름이 시작되면 우리 집에 자주, 파랑, 붉은색 수국이 소담하게 피어난다. 바람이 불면 고깔모자를 쓴 수국 농악대가 마당에서 신명 나게 고갯짓을 한다. (글: 김도수·시인)

*김도수_ 2006년 『사람의 깊이』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시집 『진뫼로 간다』, 동시집 『콩밭에 물똥』을 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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