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1/20)_ 감시르르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6-10 10:38
조회
503


‘감시르르’는 사람이나 물체, 빛 따위가 먼 곳에서 자꾸 아렴풋이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는 말로, ‘감실감실’의 전라도 사투리다.

소설 「혼불」에는 ‘감시르르’가 두 번 나온다.

①감시르르 봉우리를 감아 올리는 듯도 하고 깊은 한숨을 무겁게 삼킨 채 토해 내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것도 같은 산. (「혼불」)

첫 번째는 금생이네 ‘성냥간’이라고 불리는 대장간에서 쇠 치는 소리가 파고드는 무산(巫山·남원시 사매면 인화리) 골짜기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저쪽에서부터 남실남실 흘러오던 동산 능선이 여기 와 출렁하고 솟으면서 물살 똬리를 이룬 것 같이 보인다는 무산. 늘 달은 이곳에서 떴다. 무산의 달은, 시뻘겋게 이글이글한 불에서 달군 쇠를 퐈, 푸지지지, 물속에 요란스럽게 집어넣고 또다시 내려치는 푸른 물소리로 떠올랐다.

②“아니 자가 누구를 탁에서 저렇게 옥골선풍이다냐아, 하이고오, 참. 아깝다, 아까워. 저그다가 갓 씌우고 옥색 도포 다홍끈 늘여서 입헤노먼, 누가 보고 무당 자식이라고 허겄어? 납작없이 글방 데린님이제. 안 그런당가, 아이? 저것 좀 보랑게, 저, 저, 감시르르 눈감고 피리 부는 것 좀 바아.” (「혼불」)

두 번째는 마당에 차일 치고 병풍 세운 고리배미 굿판의 뒤편에서 아낙네들이 청년 만동이를 두고 하는 말에 담겨 있다. 호리낭창한 몸매에 봄물이 도는 낯을 발그롬히 기울이고는, 제 아비 곁에 수줍은 듯 처음으로 나앉은 만동이.

이제는 한 몫의 고인, 잽이가 된 만동이는

“자도 인자 나중에 지집 깨나 엥간히 호리게 생겠그만. 굿판에 애벌나앉자마자 예펜네들 이렇게 시시닥거리는 것 봉게로.”

“그나저나 자는 참말로 아깝네이. 당골 자식 허기는.”

“귀헌 집이 데린님으로 났으먼 거그다 대고 언감생신 이런 농을 헐수가 있능게비? 맞어 죽을라고? 이런 말 허물없이 허고 노는 것도 다저게 당골 자식이라 그렇제.”

“당골 자식이먼 머 니 화초 기생이냐? 데꼬 놀게.”

“데꼬 놀아? 품고 놀제, 아조.”

“명지 바지 해 입히먼 더 좋겄네, 보드로옴허니 착 갱기고.”

키이익, 크큭. 아낙들이 눌러 터트린 웃음에 만동이의 고개도 꽃가지처럼 젖혔을 것이다.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

③새로 산 운동화 한 짝을 계곡물에 빠트렸다. 나는 울면서 발만 동동 굴렸다. 내 초록색 운동화는 빠른 물살에 감시르르 흔들리면서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글: 송준호·소설가)

‘감시르르’는 단어가 주는 어감만으로도 바람에 날려 저 멀리 사라지는 방패연이나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초가를 떠올리게 한다. 송준호 소설가(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감시르르’라는 단어를 보며 물살에 떠내려가는 초록색 운동화를 떠올렸다. 그 초록색 운동화는 지금 누구를 태우고 바다를 떠다니고 있을까? 감시르르.

*송준호_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에 당선(1993)되었다. 저서로 『좋은 문장 나쁜 문장』, 『문장부터 바로쓰자』, 『송준호의 문장 따라잡기』 『나를 바꾸는 글쓰기』 등이 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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