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화사하게 꽃심 돋우는 곳, 전주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2-16 12:55
조회
1791


한국문학사에 큰 궤적을 남기고 훌쩍 세상을 떠난 「혼불」의 작가 최명희. 전주를 󰡐꽃심 지닌 땅󰡑이라고 한 최명희는 장편소설 「혼불」(한길사·1997)과 미완성 장편소설 「제망매가」(『전통문화』1985.9~1986.4 연재), 단편소설 「만종晩鐘」(전북대 교지 『比斯伐』 8호·1980)을 통해 전주의 역사와 삶을, 겉내와 속내를 빠짐없이 담았다. 아름답고 경건했던 문학에의 소망. 전라도 사투리를 섬뜻하리만큼 섬세하게 복원해낸 그의 문학적, 언어학적 세계를 통해 전주는 한층 빛이 나고 있는 것이다.

전주에서 나고, 전주에 묻힌 작가는 전주를 자랑스러워했다.
부조(父祖)의 함자(銜字)와 휘자(諱字)를 똑바로 아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그 음덕을 입고 살아갈 땅의 이름 또한 잘 알아야만 한다. 땅은 어버이이기 때문이다.󰡑(『혼불 8권』 78쪽)

이것이 그의 말이다. '그러하매 아조에서는 전주를 선영의 선원조발지기(璿源肇發之基)로서, 아름다운 옥과도 같은 왕조의 근원이 시작된 곳이라 하여, 이 땅에 웅숭 깊은 경의를 다하였으며, 시방동천(示方洞天) 부성을 두루 성역으로 삼아서 신성하게 가꾸고 애중히 여기었다. 그리고는 한양에 버금가는 고을로 이 고장을 존중하였더니라.'(『혼불 8권』 77쪽)라고 당당히 소개하며, 󰡐땅의 덕이 이토록 융융하매, 전주를 본으로 하는 성씨는 매우 많으니. 전주 이씨(李氏)를 비롯하여, 백제시대 팔대 성의 하나였던 전주 국씨(國氏), 그리고 전주 김씨(金氏), 전주 도씨(都氏), 문화 유씨(柳氏) 전주파, 전주 박씨(朴氏), 전주 애씨(艾氏),전주 연씨(連氏), 전주 오씨(吳氏), 전주 운씨(芸氏), 전주 임씨(林氏), 전주 장씨(張氏), 완산 전씨(全氏), 전주 정씨(鄭氏 ), 전주 주씨(朱氏), 완산 최씨(崔氏), 전주 최씨(崔氏), 전주 필씨(弼氏) 등등 미처 다 헤아리기 어려웁다󰡑(『혼불 8권』 79쪽)라고 덧붙인다.
아직도 전주 사람들은 완산에 산다.
저 아득한 상고(上古)에 마한의 오십오 개 소국 가운데서, 강성한 백제가 마한을 한 나라씩 병탄해 올 때, 맨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전라도 지역 원지국(爰池國)의 수도 원산(圓山), 그 완산, 전주. 그리고 빼앗겨 능멸당해 버린 백제의 서럽고 찬란한 꿈을 기어이 다시 찾아 이루겠다고 꽃처럼 일어선 후백제의 도읍 완산.
그 꿈조차 짓밟히어, 차현 땅 이남의 수모 능욕을 다 당한 이 땅에서 꽃씨 같은 몸 받은 조선왕조 개국시조 전주 이씨 이성계. 천 년이 지나도 이천 년이 지나도 또 천 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
∥『혼불(제10권)』

흔히 전주를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말한다. ‘천년’이란 이 고장이 ‘전주’라고 불리기 시작한 이후의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전주라는 이름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서기 757년(경덕왕 16년) 처음 비롯되었고, 그 이전에는 ‘완산’(完山)이라 불렸다. 백제와 마한의 옛 땅. 완전한 뫼와 다함없는 산과 들, 완전한 누리. 그 이전에도 이 고을의 햇살은 다사로웠으니, 그 세월을 다하면 어찌 이천년, 삼천년이 모자라겠는가. 수천 년 온의 정신으로 살아 넘는 신명난 고장, 전주….

반만 년 유구한 역사에서 오십 년이 채 못 되는 몇 세월, 한 점 꽃잎처럼 잠시 떴다가 진 후백제의 수도(首都)였지만, 조선의 건국과 함께 조선왕조의 탯자리가 되어 다시 역사의 중심이 된 전주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기후가 온난해 일찍이 문화와 예술, 학문과 종교가 발달했다.

전주는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며 걷는 것이 더 좋다. 오목대와 이목대․한벽루․경기전․전동성당․향교 등 문화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더불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느 찻집에 들어가도 멋진 산수화와 같은 동양화 몇 점은 반드시 걸려 있고, 명필은 아닐지 몰라도 정성스럽게 쓴 서예 족자 몇 점 걸려 있는 곳이 전주다.

집집마다 장항아리가 배를 내놓은 전주의 한옥들은 대부분 정갈하고 소담하다. 정감 넘치는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윽한 향이 담을 넘는다. 어슬렁어슬렁 해찰하며 걷다가 귀찮아지면 자전거를 타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굳이 힘들여 속도를 내지 않아도 좋다. 사람을 기다려 맞는 지혜를 가지고 있기에, 전주는 그리 급할 것이 없는 도시다. 완전한 땅의 꿈,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전주.
“아름다운 것들은 왜 그렇게 수난이 많지요? 아름다워서 수난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 수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 있어 아름다움은 생명력이 있지요. 그 힘을 나는 ‘꽃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 땅 전라도는 바로 그 꽃심이 있는 생명의 땅이에요.” ∥최명희(소설가)의 호암상 수상강연

전주시는 전주의 위상을 되찾아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2015년 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역사, 문학, 철학, 문화, 예술, 방언·서지 분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전주정신정립위원회를 구성해 전주에 자연스레 쌓인 얼을 탐구했다. 오랫동안 전주를 지켜온 여러 어르신과 상의했고, 4천여 명의 시민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 결과 전주정신은 ‘꽃심’이고, 꽃심에는 전주 사람들의 고유하고 특별한 성질인 ‘대동’과 ‘풍류’와 ‘올곧음’과 ‘창신’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동’은 타인을 배려하고 포용하며 함께하는 정신이고, ‘풍류’는 문화예술을 아끼고 즐기며 품격을 추구하는 정신, ‘올곧음’은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고 숭상하는 정신, ‘창신’은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출해가는 정신이다. 그 정신을 한데 아우르는 단어는 꽃심이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이 정신들은 ‘전주’와 ‘꽃심’이라는 단어를 품으며 어느 것 하나 홀로 서지 않고 면밀하게 연결돼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의 정신이 꽃잎처럼 펼쳐져 꽃심을 이룬다.

‘꽃심’은 전주 출신 소설가 최명희가 소설 『혼불』을 비롯해 여러 매체를 통해 말한 내용이 바탕이다. ‘꽃심’은 사전에 없는 단어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듣고 쓰던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의 토양에서 나온 말이다.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독특한 흡인력을 가진 자신의 문체도 “가락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 전라도의 딸이기에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맛”이라고 말했다. 전라도 산천, 전라도 가락, 전라도 말이 베풀어준 음덕. 그런 작가의 상상력과 조어력이기에 ‘꽃심’이란 단어가 나올 수 있었다.
경기전에서 몇 걸음만 동쪽으로 가면 오목대(梧木臺)가 있었지.
전주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오목대, 앙징맞고 조그마한 비각 하나 서있는, 언덕같이 나지막한 동산 기슭, 그러면서도 전주 울안이 한눈에 들어와 안기는 이곳, 햇볕 다냥한 양지밭을 정다웁게 좋아하였다. ∥『혼불 8권』 113쪽

전주 교동, 오목대 아래, 경찰서 맞은편 골목 안 깊숙이 전주천변 쪽으로 들어앉아, 흐르는 물 소리가 귀에 가까운 심진학의 고옥(古屋)에 초여름 등꽃이 소리 죽여 피어나고, 지용훈 목소리는 더욱 낮게 내려갔다. ∥『혼불 10권』 34쪽

청수정은, 동네의 오른쪽으로 넓은 시냇물이 흐르고, 우람한 은행목들이 몇 백 년 수를 자랑하며 밀밀하게 서 있는 향교, 그리고 전주 부성이 아끼는 팔경 중에 하나로 꼽히는 한벽루(寒碧樓)를 반달같이 팔에 품어안고 있었다. ∥『혼불 1권』 148쪽

기린봉에 달 뜨는 밤이 오면, 동고산성 굽이치는 성벽들은 달빛에 푸른 몸 드러내며, 산꼭대기 휘감아 넘실대는 성곽들의 강물을 아득히 이루었다. 여기서 기린봉 능선을 가파르게 타고 내린 산성은 다시 동정리(東正里) 인후동(麟后洞) 동쪽을 엮어서 휘엇하니 반달을 그리며 진안(鎭安) 가는 길목 서낭당이를 감싸고 돌아, 그 안에 물결치는 산과 내보듬어서 뺑 돈다. 그리고는 견훤의 왕궁터였다는 물왕멀 동네에 잠시 머물어 한숨 돌리다가, 이제 남고산 남고진(南固鎭)에 길고 긴 융의 꼬리를 힘껏 쳐올리니. 이것이 남고산성이었다. ∥『혼불 8권』 124쪽

성당과 중앙국민학교 담벽과 경기전은 성당을 꼭지점으로 손바닥만한 삼각형을 그릴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더구나 국민학교와 경기전은 붙어 있었다.
이렇게, 기침소리라도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전혀 다른 집채들은 우리들에게 무궁무진한 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경기전(慶基殿)은 우리들에게 가장 마음 깊은 곳이었다. ∥「만종」(『比斯伐』 1980년·8호 278쪽)

그리고 경기전을 어떻게 그런 몇 마디로 간단히 말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고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반절은 이미 허물어져 가시 철망으로 둘러놓은 울타리이고, 그 나머지 반절은 담벽이었는데 ㅁ자 중에서 ㄱ자 부분만도 다리가 아프게 걸어야 끝났다. ∥「만종」(『比斯伐』 1980년·8호 278-281쪽)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貫鄕) 이라 해서, 그 선조의 뼈가 생겨난 전주(全州) 에, 경기전을 세운 뒤 태조(太祖)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봄가을 두 번에 걸쳐 엄숙하게 분향 제전을 받들었던 곳이, 이제는 허물어져 담장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5백 년 동안, 누구라도 말(馬)에서 내려야 했던 경기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울창한 아름드리 고목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그 나무 아래 앉고 서는 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망매가」(『전통문화』1985년 11월호 165-166쪽)


전주천을 따라 가며 만나는 한벽루와 싸전다리, 완산교, 다가교에도 작가의 풍성한 역사인식과 상상이 녹아 흐른다. 전주천이 옆을 스쳐 가는 한옥마을에서 나고, 전주천이 어깨 걸고 흐르는 완산동과 다가동에서 자란 작가는 소설로 전주의 수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작가와의 만남은 소살소살, 설레임을 동반한다.
전주천의 까마득한 상류, 슬치채(瑟峙)골짜기로부터 흘러내려오던 물살이, 한벽당 언저리의 각시바우 벼랑 아래에서 검푸르게 굽이를 돌면, 이윽고 한숨을 돌린 냇물은, 들판처럼 평평하게, 서북쪽을 향하여 유유히 흐르는데. 그리 오래지 않은 예전에는 흰 돛단배를 띄우기도 했다는 전주천은, 지금도 큰물이 한 번 지면, 싯벌건 황토 흙탕물이 도도하게 방천을 깎으며 거칠게 넘쳐서, 흡사 붉은 강물처럼 무섭지만, 그 물이 다 빠진 보통 때는, 가라앉은 푸른 시냇물이 반(半), 흰 자갈밭이 반으로 보인다.
이 냇물은, 전주의 남동방(南東方)에서 서북(西北)을 바라보며 흘러들어, 고을의 남쪽, 서쪽 끝자락을 이루어주었다. 이 끝자락을 건너는 다리들은 많다.
시내 복판 팔달로에서 남원 순창으로 넘어가는 미전교는, 다릿목 양쪽 방천으로 좌우에 쌀을 사고 파는 싸전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싸전다리라고 불리었고, 용머리 고개로 빨닥 넘는 염전교 근처에는 소금장수들이 전을 차리고 앉아 소금전 다리로 불리었다.
그리고 매곡교.
이 다리는 연죽교(煙竹橋)라고도 불리었다. 옛날에는 이 다리 아래 하천 도량으로 우시장(牛市場)을 열었던 일이 있고, 그 옆에는 담뱃대(煙竹:설대) 장수들이 좌판을 벌이고 늘어앉은 곳이라, 사람들은 󰡐설대전 다리󰡑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근처의 다리들이 온통 장수들 차지가 된 것은, 바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장터 󰡐남문시장󰡑 이 냇물을 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주의 남쪽 대문, 풍남문 성벽에 엎어지듯 깔리기 시작한 가게들은 냇물이 가로막아 더는 나가지 못한 채,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매곡교는 가장 빈번하게 사람들이 왕래하는 다리였는데, 다른 곳과는 달리, 다리 위에서 온갖 광주리를 펼쳐놓고 장사를 하는 통에, 사람과 광주리에 채여 그 틈새를 꿰고 지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 안에 번듯한 가게를 챙길 수도 없고, 길바닥의 노점상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형편에, 그날 벌어 그날 먹어야 하는 하루벌이 사람들은 이곳이 마땅하였다.
채소 광주리, 과일 목판, 아니면 널판자 한 조각에 여러 식구 입을 걸어야 하는 남루한 장사꾼들은, 변두리에서 머리에 광주리나 대소쿠리 하나씩을 이고 이 다리 위로 모여들었다.
숲말댁도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제망매가」(『전통문화』 1985년 11월호 163쪽)

사람들은, 여름밤이면 이 냇기슭 천변으로 몰려 나왔다. 노인들은 버드나무 아래 평상을 끌어다 내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기우는 별자리를 바라보았고, 젊은 사람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용소의 위쪽에서는 남자들이 자멱질을 하였다. 여자들의 자리는 용소 아래쪽이었다. ∥『혼불 2권』 166-167쪽

봉련이가, 집이 아닌 곳에서 아버지를 본 것은 그때, 전주천 냇가 자갈밭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숨죽인 숨소리로 차오르고 있었다.
봉련이 귀에는, 그날의 천변(川邊) 뙤약볕에 울리던 놋쇠 징소리가 선연하게 들린다. 그 소리는, 고라실네가 두드리는 징소리와 한 가락으로 어우러진다.
사실 그날, 봉련이 모녀는, 햇빛을 날카롭게 찢던 그 호루루기 소리에 쫓겨 아버지의 소리 천막 아래로 숨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봉련이네 동네 애통이골에서, 완산칠봉(完山七峰) 기슭의 남문시장(南門市場) 다리까지는 꽤 먼 곳이었다. 그러나 숲말댁은, 소쿠리에 팟단이나 고구마대 감자대 호박 몇 덩이 같은 것을 조금씩 받아다가 그 다리 위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팔곤 하였다. ∥「제망매가」(『전통문화』 1985년 11월호 162-163쪽)

최명희가 묘사하는 그 순간마다 다가봉의 암벽에서 입하꽃나무 육도화(六道花)의 향기도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냇가의 자갈밭에는 눈부신 달맞이꽃들이 지등(紙燈)처럼 피어났을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옛 전주역이었던 현재의 전주시청, 중앙초등학교, 완산초등학교, 풍남초등학교, 전북대학교, 덕진공원 등도 빼지 않았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단청 물린 주칠 기둥에 아롱아롱 휘황한 천장무늬가 흡사 어느 궁궐이나 사찰 같은 느낌을 주는 전주역의 고풍 창연한 역사(驛舍)는 장엄하리만큼 육중한 골기와 지붕 때문에 더더욱 웅장해 보였다. (중략)
전주역이 유독 이처럼 사람을 품어 들이는 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철도와 기차라는 신식 개화물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조선식 건축물, 전주역.
마한에서부터 백제 넘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연한 빛을 자랑해 오던 고래(古來)의 고도(古都)여서 그러했을까.
어떻게 이곳 사람들은 저 쇳덩어리 시커먼 물체가 들고나는 철로와, 팔도의 모산지배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고 모여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 마당에, 이와 같은 한옥을 천연스럽게 지어 앉힐 수가 있었는지. 정거장은 전주와 사람들과 기차와 하도 알맞게 어울리어, 강모는 그 광장에 들어설 때마다 서러운 부랑(浮浪)이 위무를 받는, 흡습을 느끼곤 하였다. 그것은 눅눅한 듯 쓸쓸하고 의연한 의무였다. ∥『혼불 8권』 74-75쪽

“내가 견문 좁은 아낙으로, 들은 바는 별로 없지만, 멀지 않은 전주에 완산팔경(完山八景)으로도 유명한 덕진(德津) 연당(蓮塘) 삼만삼천 이백여 평, 끝간 데 없이 연꽃이 핀, 넓으나 넓은 호수의 둘레 육천여척, 그 연당 호반을 걸어서 돌게끔 일주 도로를 수축한 이도 있다더라. 혼자서. 그게 부성(府城)의 갑부 박기순(朴基順)이라 하던데, 그 사람은 무엇 하러 자기의 온 재산을 기울여 문전옥답도 아닌 물가에 제방을 쌓고 도로를 냈겠느냐. 제 몫을 삼으랴고 그리하였으리. 아닐 것이니라. 그 절경을 완성하여 누구를 주자고 그리했을꼬.” ∥『혼불 1권』 158쪽

그때는 학군제 같은 것도 없었으므로, 이곳 저곳의 학교에 흩어져 다니던 우리는, 걸핏하면 남의 학교 흉도 보았다.
중 중 중대가리, 중앙학교.
어이그, 느네는 뭐 벨건 줄 알어? 느네는 풍 걸린 학교야. 중풍 걸린 풍남학교야.
치이. 느네는 똥통학교야.
늬가 봤어? 니가 봤어?
껄렁패 많은 데는 느네 학교, 완산학교.
이게 까불어잇. 참말로 패줄까부다.
그러다가 한바탕 싸움이 붙기도 하였으나, 어느 틈에, 풀밭에 엎드려 숙제들을 하였다. 구구단을 막 배운 삼학년 아이 때문에 시끄러워 눈을 흘기기도 했다. ∥「만종」(『比斯伐』1980년·8호 282쪽)

기미년 삼월에 독립만세 운동이 거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용머리 고개를 하얗게 넘어오며 목메어 만세를 불렀지.
그 자리는, 강모가 오유끼와 함께 살던 다가정의 다가봉 밑 용소(龍沼)물살 바로 옆이었다. 그리고 곤지산 초록바우 깎아지른 벼랑도 냇물을 따라 한동안 몇 생각하면서 걸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혼불 10권』 298쪽

그리고 또 하나, 전라도의 슬픈 역사. 몸부림치다 승천하지 못한 한을 품은 용의 머리와 곤지산 초록바우 음산한 벼랑에 참형 당한 채 걸린 머리.
“전주 부성 남쪽 바깥 완산칠봉 봉우리 아래, 전주천 흐르는 물자락에 두고, 동쪽으로는, 조선 말엽에 참형자들의 목을 쳐 효수하던 형장(刑場) 곤지산(坤地山) 초록바우 음산한 벼랑을 끼고, 서쪽으로는, 마한의 기운이 쇠잔해질 때 전주천에서 자란 용이 천 년을 기다려 승천을 하려고 안간힘 쓰며, 전주천 물을 모조리 삼키고 하늘에 올랐으나, 그만 힘이 빠져 떨어지고 말았다 하는, 용머리 고개를 끼고 있다지 않아?” ∥『혼불 10권』 297쪽

작가는 「혼불」 심진학의 입을 빌어 “그것은 견훤의 넋”일 것이라며, “아직도 전주 사람들은 완산에 산다.”라고 말한다.
굳이 작가의 글 속이 아니라도, 전주는, 어느 길가에서 만난 나이 자신 노인들이 “옛날에 이야기책 그 재미난 춘향전의 완산판 목판본을 찍어내던 자리 또한 곧 여기 아니면 저기일 것이라고, 손가락을 들어, 즐비한 교동 기왓골 지붕 위를 가리키며”(『혼불 8권』 119쪽) 짚어 주는 그런 곳이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 최명희. 그로 인해 전주는 세월이 지날수록 깊은 맛이 나는 도시가 되고 있다.

∥글: 최기우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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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쓰레기가 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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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숨 쉬는 기둥」
최명희문학관 | 2021.09.15 | 추천 0 |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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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만년필을 쓰는 기쁨」
최명희문학관 | 2021.09.15 | 추천 0 |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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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등롱초(燈籠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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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둥그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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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도근점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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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놓아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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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기억은 저마다 한 채씩의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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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영상]최명희의 수필 「그리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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