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혼불」 속 민속놀이 윷점과 가투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2-23 15:09
조회
2783
소설 「혼불」은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의 백과사전’이며, ‘우리 문화전승의 전범(典範)’이라 일컫는다. 국어학, 민속학, 역사학, 판소리 분야의 학자들도 「혼불」에 ‘민족사의 숨겨진 변방을 복원해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호남의 관혼상제 의식과 정월대보름 등 전래 풍속들에 대한 묘사는 현미경을 들이댄 듯 정밀하고, 결 고운 언어로 생생하게 구사된 남원 지역 사투리는 구수하고 정겹다. 완벽한 저작을 위한 작가의 노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질긴 투혼이 빚어낸 역작. 방대한 자료 조사와 수집을 병행했고, 흡족할 만큼 고증이 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쓰지 못했다. 17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소요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혼불」은 연날리기나 달맞이 같은 풍속, 향약과 같은 제도, 봉천 서탑거리 등을 정밀하게 복원하면서 우리의 의식에 박혀 있는 설화들도 재해석했다. 『동국세시기』나 『경도잡지』에서 얻어야 할, 잊혀 가는 세시풍속이나 고유한 민속놀이를 등장인물의 삶에 녹아들게 해 되살려내고 있다. 여인들의 베틀가와 화전가, 일제강점기 여인들의 놀이인 가투놀이에 설날에 치는 윷점까지 소개해 놓은 것을 보면 최명희가 얼마나 철저한 글쓰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 길흉을 머금은 윷점
오류골댁은 짐짓 침착한 척 대꾸하며, 앓는 자식 비접 보낸 부모다운 무거움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윷짝을 모두어 사기종지에 담는다.
“때 아닌 춘삼월에 귀 빠진 윷놀이는?”
하던 수천댁이 그제서야 짐작이 간다는 듯
“오, 윷점 쳤는가 보구나.”
하면서 웃었다.
“어디. 이리 좀 주어봐. 나도 한번 해 보게.”
넘어진 김에 쉬어 가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도 있다더라만, 나도 윷 본 김에 점이나 쳐 보자. 아까 흰 나비를 보았더니 영 마음이 안 좋네. 아이고오, 이놈의 세상.
“원래 윷점 칠라면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윷 가지고 해야는 것 아니라고?”
수천댁이 손바닥에 엎은 종지를 짜락짜락 흔들며 말했다.
“머, 재미로 허는 것인데요, 무슨 나무 윷이면 어떻답니까.”
“그래도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좋아헌다대.”
“싫어헌다등만. 아닝가? 에이, 그런 무서운 말씀 말고, 어서 던져 보서요. 맞는가 좀 보게요.”
수천댁은 종지에 담긴 윷을 손바닥에 엎어서 살짝 쥐고 흔들었다.
짜그르락, 짜그르락.
윷들이 종지를 치는 소리가 투명하고 곱다. ∥「혼불」 8권 271쪽

윷점은 윷을 세 번 던져서 각기 나온 상태를 합해 얻은 괘로 한 해의 운수와 풍흉을 점치는 새해 풍속이다. 걸·모·걸이 나오면 행인득로(行人得路·나그네가 길을 얻었다), 도·모·걸이 나오면 사생복생(死生復生·죽은 이가 다시 살아남) 등 64개의 점괘가 있다.

「혼불」 속 윷점은 제8권에서 오류골댁이 동서인 수천댁과 딸 강실이를 걱정하며 점을 치는 장면에서 나온다. 이 장면에서 작가 최명희의 눈은 소설가일 뿐 아니라 민속학자, 역사학자, 언어학자가 된다. 어떤 사건을 쫓아가다가도 그 사건에 연루된 풍습이나 역사적 사실을 만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를 가진 강실을 떠나보낸 오류골댁은 윷을 던져 점을 쳐본다. 강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오류골댁의 심정은 윷점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절박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묘사하는 작가는 오류골댁과 윷점의 상관성을 짚어 가다가 어느 새 윷점에 얽힌 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한다. 곧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들먹이다가 결국 윷점 64괘의 뜻풀이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그 장을 마무리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오류골댁이 중심이고 윷점은 주변으로 물러날 텐데 최명희는 오히려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패턴을 따르고 있으니, 작가는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자료조사를 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냈음이 틀림없다.

윷말은 도·개·걸·윷·모 다섯 개이지만, 윷점은 윷과 모는 같은 괘로 쳐서 네 말로 괘를 삼는다. 첫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상괘, 두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중괘, 세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하괘로 삼아 모두 64괘로 되어 있는 괘를 찾아 점사(占辭:점괘에 나타난 말)를 읽어 길흉을 판단한다. 윷점은 재미로 보는 것. 너무 믿을 필요도 그렇다고 무시할 필요도 없다. 좋은 내용이든 서운한 내용이든 삶을 반성하고 조심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하던 가투놀이
혼자 앉아 놀아도 재미있고 여럿이 둘러앉아 놀아도 재미가 있는 가투놀이를 하고 나면, 괴로운 시절에도 정다운 흥이 나고, 온몸 가득 모국어가 차올라, 목마른 언어의 갈필(渴筆)이 흠뻑 젖곤 하였다. ∥「혼불」 10권 45쪽

「혼불」에 소개된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다시 살려내고 싶은 전통놀이는 시조놀이인 가투(歌鬪)다.
가투 놀이는 시조가 적혀있는 카드로 누가 더 시조를 많이 외우고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다. 시조연상놀이라고도 한다. 두 장의 카드 중 큰 것에는 시조의 초장·중장·종장을 모두 써놓고, 작은 카드에는 종장만 써서 한 사람이 큰 카드의 초장·중장을 읊으면 다른 사람들은 작은 카드에서 종장을 찾아내는 놀이다. 이를 통해 시조를 외울 수 있기에 놀이도 즐기고 시조도 알게 되어 큰 학습 효과를 낼 수 있다. 가투에서 시작된 화가투(花歌鬪)는 ‘좋은 노래(시조)로 겨룬다.’라는 뜻으로, 시조를 노래의 음률에 맞춰 부르면서 노는 놀이다.
이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시조놀이로서 우선 빳빳한 종이를 가로 두 치, 세로 세 치 정도, 그러니까 가로 칠 센티미터에 세로 십 센티미터가 되게 이백 장 가량을 자른 다음.
각 백 장씩, 반으로 나누어서 뒷면에 푸른색과 붉은 색을 칠하거나, 색종이로 나비, 박쥐, 꽃송이 같은 무늬를 오려서 붙이거나, 아니면 무슨 부호로 표하든지 하여 구분하고.
먼저 푸른 색 백 장의 앞면에는 전래 시조의 초·중·종장을 모두 적고, 붉은 색 백 장에는 같은 시조의 종장 부분만 적는다.
그래서 짝을 맞추며 가지고 노는 것인데. 인원에 제한은 없으나, 두 명 이상 여섯 명 미만이 놀기에 가장 적당하다.
이 가투놀이를 할 때는, 우선 모두 둥글게 모여 앉은 후 좌장 한 사람을 선정해 푸른 색 카드 백 장을 가지고 있도록 한다. 그리고 나머지 붉은 색 카드는 방바닥이나 탁자에 모두 글씨가 보이도록 펼쳐 놓는다.
그런 다음 좌장은 자기가 들고 있는 푸른 색 카드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한 장 골라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헤내어.”
이때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바닥에서 그 종장을 찾아야 한다.
“얼은 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누구든지 먼저 집은 사람이 임자다. 바닥에 펼쳐진 카드에서 얼른 종장을 찾은 사람은 한편에다 그 카드를 보관한다.
그런데 이방원의 ‘하여가’나, 정몽주의 ‘단심가’ 혹은 황진이의 시조처럼 유명한 것은 초·중·종장 모두 외기도 쉽고 아는 이도 많지만, 그래서 ‘동짓달’만 들어도 ‘구비구비 펴리라’가 자동적으로 떠오르지만,
창밖에 동자 와서 오늘이 새해라커늘
동창(東窓)을 열쳐 보니 예 돋던 해 돋아온다.
아이야 만고(萬古) 한 해니 후천(後天)에 와 일러라
“주의식(朱義植).”과 같은 시조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나중까지 못 찾기도 하였다. 하지만 못 찾아도 재미있었다. 새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찾는 것은 더 재미있었다.
백수나 되는 시조를 다 외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모르던 시조도 한 번만 찾아 읊으면, 전에부터 알아온 것처럼 그다지도 포근하고 그리워 낯익은 서정으로 안기는 구절구절.
우리 노래. 우리 글. 우리의 마음.
이렇게 해서 백 장의 시조를 모두 찾아 맞춘 후에, 제일 많이 찾은 사람한테는 상을 주고, 가장 적게 찾은 사람한테는 가벼운 벌을 준다.
물론 내기 놀이라면 이기려고, 혹은 안 지려고 이 시조들을 더 열심히 외우기도 하겠지만, 가투놀이를 하면, 놀면서 저절로 우리 시조 백수를 외우게 되기 때문에, 공부 삼아서, 정명회에서는 모이면 으레 카드를 폈다. 가투놀이를 할 때만큼은 식민지를 잊어 버렸다.
처음에는 초· 중·종장 다 있는 푸른 색 카드를 들고 모두 외우지만, 나중에는 종장 하나만 씌어 있는 붉은 색 카드를 들고, 혼자서 초장·중장을 더듬어 익히는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그것은 좀 만만치가 않았다. 가령, “석양이 재 넘어가니 임자 그려 우노라.”만 적힌 카드를 들고 그 앞을 떠올려 보라. 혹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아니면, 앞도 뒤도 없이 오직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돌아오노라.”만 적힌 시조는 알 듯 알 듯하면서도 얼른 찾기 어렵다. ∥「혼불」 10권 42∼45쪽

「혼불」 속 가투 놀이는 좀 더 애틋하고 절박하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사라진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에 한 수씩 시조를 외우고 수첩에 적어 돌려 보곤 했으며, 마음 맞는 몇 사람이 모이면 남모르게 가투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터무니없는 강압 교육에 거부하고 저항하기 위해 조선 사람들은 비밀리에 가투놀이를 한 것이다. 따라서 가투놀이는 단순히 여흥을 즐기기 위한 놀이가 아니라,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놀이다. 우리 민족과 역사와 문화를 기어이 잊지 말아야 하고, 기필코 다시 찾아야 한다는 자각이 담긴 귀하고 성스러운 놀이다.

∥글: 최기우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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