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문화콘텐츠 개발의 훌륭한 원천, 소설 「혼불」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2-16 12:11
조회
2463


한국의 전통적인 유·무형의 문화적 요소들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어 있는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그 자체로 문화 서사이자 콘텐츠다.

설화와 민요, 무가, 속담 등이 널리 인용돼 있고, 무당굿과 점복, 풍수, 동제, 삼신, 조상단지, 속신 등 민속신앙의 유래와 이치와 의미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풍물과 판소리, 노래, 놀이도 두루 등장한다.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일생의례와 정월 대보름과 단오 등의 세시풍속, 취락과 모듬살이의 모습, 생활관습, 종가와 종부 등의 친족조직 등의 사회상 역시 실감나게 그려져 있으며, 각종 살림살이와 민구(民具), 의식주 생활, 두레와 같은 농사관행 등에 관한 정보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염료 제조법, 옷감의 때와 얼룩을 빼는 갖가지 세탁법 등 한국인 생활의 모든 면모를 지극 상세하게 구성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민속학자인 안동대 임재해 교수가 “「혼불」은 혼례나 장례를 비롯한 민속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민속현상들을 서사적 맥락에 두루 끌어들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고 경탄하고, 서강대 김열규 명예교수가 “「혼불」은 이 시대가 낳은 민족의 대표적이고도 전형적인 이야기의 불씨로 또 전통성 강한 겨레의 정서의 불씨로 여물어 갈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민속 문화의 면모가 세세히 구현돼 있는 것은 참으로 빼놓을 수 없는 「혼불」만의 매력이다.

박물지를 방불케 하는 「혼불」의 방대한 민속자료들은 발표 초기에 소설로 수준미달이란 평가를 받을 만큼 단점으로 지적되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평가는 크게 다르다. 우리가 대대로 전승해온 풍속의 세계를 최대한 정밀하고 자상하고 아름답게 복원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민족의 참된 형체와 정체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 장르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면서 한국 문학의 한 단계 높은 차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민족지(民族誌, ethnography)적 관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에 의해 활물화된 「혼불」의 다양한 민족지적 형상들은 역사, 옛이야기, 시문, 사상·신앙, 사회․경제․신분 제도, 의식과 의례, 의식주, 예술(음악·미술), 지리와 지명 등 다양하다.

전주대 장미영 교수는 “「혼불」은 다른 소설처럼 서사적 사건 속에 문화적 요소들을 용해시키지 않고 서사성이 파괴될 정도로 문화적 요소 그 자체를 도드라지게 따로 구별하여 재현해 놓은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전남대 장일구 교수도 “「혼불」은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문화지적 정보매체로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혼불」은 한국인들이 면면이 가꾸어온 세시풍속·관혼상제·음식·노래 등 민속학·인류학적 기록들을 아름다운 모국어와 극채색으로 생생하게 복원해낸 빼어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문화 현장의 세세한 구석을 살펴 기술하는 대목들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이는 「혼불」이 문화산업 시대에 걸맞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의 훌륭한 원천자료가 된다는 의미다.

문화산업은 경제적 가치 외에도 문화적 정체성이나 가치관, 세계관의 표상을 창출해내기도 하는 만큼, 이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전통적인 삶의 원형을 복원해내려 애쓴 「혼불」은 한국 문화의 상징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는 풍부한 원천 자료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혼불」을 쓰기 위해 무수히 많은 문헌과 현장과 전문가와 옛 어른들을 찾아다녔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느낌으로 자료를 찾으러 다녔고, 그런 작가에게 손때 묻은 자료들은 세월의 혼을 담은 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세월에 묻혀 잊혔던 자료들은 “활물이 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작가에 의해 「혼불」이란 작품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혼불」에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양상이 나타난다. 문학박사 고은미는 「혼불」에서만, 전북과 관련된 250여 가지의 스토리텔링 소스를 뽑아내기도 했다. 그는 특히 “「혼불」의 역사 관련 서술은 남원을 중심에 놓고 마한→백제→통일신라→후백제→조선에 이르고 있다.”며, “철저하게 남원과 전주라는 지역적 관점에서 역사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소설 속 전주고보의 역사 선생 심진학과 동경 유학생 강호를 통해 드러나는 이 역사의식은 철저하게 토착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계보를 찾아 후백제, 백제, 마한으로 역사적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들의 역사인식의 중심에는 자신들이 정주(定住)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심진학은 자신을 ‘백제의 아들’, 자신의 조상을 ‘백제 유민’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지역 정체성에 뿌리를 둔 심진학의 역사 인식은 조선 건국의 시조 이성계를 ‘백제의 후손’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선은 백제인지도 몰라. 백제를 무너뜨린 나당 연합군의 신라를 고려는 흡수해서 무너뜨렸고, 조선은 또 그 고려를 무너뜨렸으니, 백제를 못 잊어 세운 나라 후백제의 도읍지 전주에서, 백제 사람, 백제의 자손, 이성계는 몸을 일으켜 신라의 핏줄이 섞인 고려를 치고 조선을 세웠다. 그러니까 결국 조선은 백제가 다시 살아난 것인지도 몰라. ∥『혼불(제8권)』

이기채 역시 전주로 시험을 치러 떠나는 아들 강모를 사랑에 불러 앉혀 놓고 풍패지향(豊沛之鄕)의 고사를 들려준다. 이기채가 전주를 설명하면서 풍패지향의 고사를 인용하고, 조선의 발상지이면서 동시에 성씨의 관향이라는 점을 강모에게 강조하는 것은 장소가 갖는 위상을 통해 그 땅에서 자란 자손으로서의 자부심을 아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지역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이기채가 아들 강모에게 지역의 역사를 들려주듯 아버지에서부터 이어진 지역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아들에게 이어지고 또 그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의해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가 전해지고 후세대는 그들 조상들의 삶의 자리를 토대로 이어져 내려온 지역의 역사를 조상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지역을 통해 후대와 현대가 이어지고 삶의 현장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공유된 이들의 삶에 그 지역은 󰡐어여쁜 곳󰡑이 되고 선조들의 숨결이 오늘날까지도 자국을 역력히 남기고 있는 살아 숨쉬는 ‘생명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글: 최기우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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