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5/20)_ 다보록하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6-14 10:17
조회
499


‘다보록하다’는 풀이나 작은 나무 따위가 탐스러울 정도로 소복하게 혹은, 수염이나 머리털 따위가 짧고 촘촘하게 많이 나서 소담하게 보이는 것을 말한다.

「혼불」에서 ‘다보록’은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남원 달궁(達宮)에서다.

①지금은 주춧돌 몇 개만이 여기저기 희미하게 묻히고 누운 흔적과, 묵은 밭뙈기처럼 버려진 채 그저 평평한 듯한 것이 고작인 모습으로, 무심히 잡초를 다보록 뒤집어쓰고 있는 늦가을 달궁의 별궁터에 서서, 강호는 “어여쁜 남원·····.”이라고 에이게 생각한 일이 있었다. (「혼불」)

강호는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남원 달궁에서, 지금은 잡초가 무심해도 내 선조의 선조와 그 너머 더 먼 선조의 숨결이 스민 자취가 이렇게 지워지지 않는 터를 잡아 오늘까지도 자국을 역력히 남기고 있다는 것에 감동한다. 강호는 깎아지른 험산 준령 첩첩한 지리산의 정령치 꼭대기에서 운해를 허리마다 머리마다 흰 너울로 감고 까마득히 이랑져 굽이치는 산 능선의 검푸른 물마루를 내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깊이 몸을 떨었다.

②눈썹 하나만 보더라도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시커멓게 먹칠한 솔잎처럼 곤두선 것이 아니라. 선운사 북방은 완연히 웃음진 주름의 노안에 어질고 부드러운 흰 눈썹 다보록이 눈을 덮어 나부끼는 데다가, 수염도 맑은 은실 다발을 빗어 내린 듯 투명하였다. (「혼불」)

두 번째는 선운사 북방천왕을 설명하면서다. 같은 흰 눈썹에 흰 수염이라도, 통도사 북방은 뭉게구름같이 봉글봉글한 눈썹에 정자관을 거꾸로 붙인 형국의 수염을 달았으며. 능가사 사천왕의 눈썹은 꿈틀꿈틀 누에 같다.

쌍계사 북방은 푸른 얼굴에 쪽빛 무명실 타래를 굼시르르 꼬아 붙인 눈썹이 연민으로 묵근하고. 불갑사 북방은 찌푸린 듯 가늘게 좁은 눈썹머리가 꼬리로 갈수록 치솟다가 퉁퉁하게 내려앉으매,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용서해 버리는데. 턱수염은 마치 먼 바다 위의 안개 속에 뜬 삼각섬 그림자들 같았다.

그리고 완주 송광사 북방은 가장 사천왕다운 장엄 용맹의 풍모로 눈썹 터럭 한 올 한 올 힘차게 박아 세운 것이 장비 수염과 함께 어울려 서슬 푸른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③수령이 한 백 년은 되었을까, 붉은 갑옷 입은 몸에 푸른 머리를 구름처럼 우람하게 드리운 나무도 있고, 이제 겨우 뼘치를 막 벗어난 다복솔이 어린 가지마다 다보록한 담록을 머금은 것도 있지만, 대개는 어씩어씩 비슷한 동배들끼리 한 무리가 기골차게 모여선 대학병원 울창한 송림. (「혼불」)

세 번째는 소나무 숲이다. 늘어선 소나무들이 그 잘생긴 용의 몸통을 미끈하게 굽이 틀며 치솟아 오를 때. 투둑, 툭, 기름지게 굵은 비늘이 소리 없는 폭죽처럼 봄기운에 터진다.

용솟음이 저리하리.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

④원평 장날입니다. 딸기, 상추, 옥수수, 토마토까지 어린 모종들은 다보록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치 농부 할아버지를 따라 새싹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나온 듯하였습니다. (글: 경종호·동시작가)

동시를 쓰는 경종호 작가가 떠올린 ‘다보록하다’는 원평 장날이다. 동시작가의 ‘다보록하다’는 「혼불」 속 쓸쓸하고 덥수룩한 느낌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다정하다.

*경종호_ 200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14년 『동시마중』에 동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 『천재 시인의 한글 연구』와 디카시집 『그늘을 새긴다는 것』을 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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