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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포스트 20220701]최명희문학관, 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18/20)_ 찰찰히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7-01 14:54
조회
127
 

‘찰찰히’는 지나치게 꼼꼼하고 자세하다는 뜻이다.

소설 「혼불」에서 ‘찰찰히’는 딱 한 번 나오는데, 홈실댁이 청암부인을 습(襲)하는 장면에서다.

아직 젊은 나이 숱이 많아 무성한 검은 머리에 자주 댕기 붉은 입술을 물릴 적에는, 그것이 곧 흙인 줄을 누구라서 알 리 있으리.

①아침마다 참빗으로 찰찰히 빗어 내릴 때, 그 기름 돌아 흐르는 맑은 윤기는, 흡사 물오른 꽃 대궁같이 신신하여, 단을 자르면 그 자리에 금방이라도 투명한 진액이 어리어 묻어날 듯하지만. (「혼불」)

그런 모양은 한낱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허망하다.

빈 산에 홀로 누워 뼛속에 흙이 차면, 빗던 머리 대신으로 쑥대가 우거질 때, 바람이 빗어 줄까, 달빛이 쓸어 줄까.

베개에 묻어 있는 청암부인의 낙발(落髮) 몇 오라기를 줍는 홈실댁의 나이 든 손이 허전하게 떨린다. 타 버린 검불의 재와도 같이 힘이 없는 머리카락은, 집어들어 백지에 올려 놓기도 전에 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자단향을 깎아 넣고 오래 끓인 물을 두 개의 놋대야에 각기 담아 온 부인들이, 시신의 왼쪽과 아래쪽으로 조용히 앉는다. 떠 온 물에서는 그윽하여 아득한 향기가 피어 오른다. 참으로 먼 곳의 향기이다. 그 향기는, 시방(屍房)에 모여 앉은 부인들의 머릿결과 저고리와 치마의 갈피로 스며들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저승의 그림자로 에워싸며 자욱하게 하였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인 동고조(同高祖) 팔촌 이내의 복(服) 입는 부인이 아닌 무복친(無服親)이면서, 문중에서도 각별히 범절이 남다르고, 생전의 청암부인과도 같은 항렬로 도탑게 지냈던 홈실댁은 망인의 습(襲)을 하려고 둘러앉은 동종(同宗) 부인들에게 낮은 소리로 절차를 이른다.

“그저 공손히 하는 것이 제일이요, 슬퍼하는 것은 그 다음인즉.”

시신을 대할 때 반드시 정성을 다하라고 하였다.

자단향 물을 적시어 머리를 감기고 깨끗한 무명 목건(沐巾)으로 닦은 다음 가지런히 빗질을 하는데, 힘 없는 낙발 몇 올이 빗에 묻어났다. 그것을 아까처럼 백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고, 검은 흑단(黑緞)으로 댕기를 감아 흰 머리를 묶는다.

이제 다시는 이처럼 머리를 빗는 일이 없으려니, 살에서 물러난 머리털 흙 속에 흩어지고, 반듯한 가리마 길 어느결에 무너져, 그 위에 더북한 청초(靑草)만 덧없는 바람결에 나부낄 것인데.

홈실댁은 한숨을 쉰다.

눈을 감은 망인의 얼굴을 씻기고, 약간 오그린 듯도 하고 방심한 듯도 한 두 손을 씻기고, 욕건(浴巾)에 물을 축여 상하체를 고루 씻긴 뒤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거두어 내며,

사람의 몸이 이렇게 작은 것인가.

다시 한숨 지었다.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

②장마가 끝났다. 마침내 구름이 물러난 자리에 해가 들어섰다. 햇살은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찰찰히 어루만졌다. 물기가 어린 녹색식물들이 반짝 빛을 냈다. (글: 박서진·동화작가)

*박서진_ 200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와 2009년 대전일보·경상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했다. 『마지막 퍼즐 조각』 『세쌍둥이 또 엄마』 『빨리빨리 모범생』 『고양이가 된 고양이』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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