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21205]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⑦진정한 문학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끼손가락』을 읽고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12-05 10:15
조회
299
  • 매체: 전북도민일보
  • 날짜: 2022년 12월 5일
  • 제목: [최명희문학관_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 ⑦ 진정한 문학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끼손가락』을 읽고
  • 출처: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5579
  • 쓴이: 송지희 극작가
새끼손가락은 우리 몸 가운데서 가장 작고 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항상 삶의 지고지순을 지양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사랑도 신의도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언약을 한다. 효도 정절도 우국지사도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의지를 표출한다. ∥「새끼손가락」 중에서

삶에 충실하고 인정이 많았던, 노년의 생 속에서도 소녀같이 글을 쓰던 작가 목경희. 작가는 수필집 『새끼손가락』(교음사·2003)에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으면서도, 그 속에 따뜻하지만 단단한 진리를 녹여냈다.

이 책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이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짙게 배어있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 추억을 함께 나눈 학창 시절 친구들, 함께 동고동락하며 글을 쓰던 문인들과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냈던 수많은 사람의 생사고락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적혀있다. 작가의 글 속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작가의 정이 담뿍 묻어있기도 하고, 먼저 떠나간 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운 추억이 멍울져 내리기도 한다. 작가는 지나간 시간을 충실히 그리워하고 추억한다.

한 자 한 자가 역사이고 기록인 듯, 대한민국의 굵직한 역사를 살아낸 작가의 삶 또한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 한국사와 더불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옛 전주의 모습도 글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모진 세월에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처럼 경희빌딩 그 앞에만 서면 겁도 없이 꿈을 안고 달리던 젊은 날의 고된 숨결이 한 가슴에 밀려든다. ∥「빌딩 이야기Ⅰ」 중에서

빌딩 이야기가 적힌 수필들을 보면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주의 시가지가 변화하는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중앙동 시계방, 한일관, 낡은 일산 가옥, 양장점과 화식부, 경양식 레스토랑과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싸롱이 있던 경희 빌딩, 그리고 건물을 올리기 위해 한겨울에 부동액 대신 소금을 넣어 콘크리트 슬래브를 치던 시절의 이야기가 가득 녹아있다.

일제강점기를 가로질러 광복, 6·25, 4·19, 5·18, IMF, 그리고 21세기까지 온 세월을 한 몸으로 받아낸 사람의 이야기는 그 세월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역사적 사료이기도 하다. 천천히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시는 할머니와 차를 한잔 놓고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생자는 필멸이요, 회자는 정리’ 이것은 생의 법칙이다. 이제 어리석은 내 눈에도 생의 끝이 보인다. 언제까지나 죽음이나 이별을 슬퍼할 수만은 없다. ∥「너는 아직도 9살」 중에서

작가는 자신보다 앞서 보낸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 딸의 죽음, 그리고 아홉 살 난 아들의 죽음, 그 세월의 아픔을 글로 승화시킨다.

비록 10년도 못 산 짧은 생애였지만 우리 치구가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갔는지, 그 야의 삶의 흔적을 더듬다 보니 모진 세월도 그 애를 어쩌지 못하고 비켜간 듯 그 애는 아직도 9살 그 순수무구한 모습으로 내 가슴에 살아 있다. ∥「너는 아직도 9살」 중에서

딸 혜신의 죽음은 작가의 이전 책인 『분홍옷 갈아입고 꽃길을 가네』에 녹아있지만, 이 책에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둘째 아들 치구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뒤이어 조카딸인 이복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말미에는 이렇게도 적어두었다.

혹자는 인생을 잠깐 머물다 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조금은 먼저 가고 조금은 나중에 가는 차이만 있을 뿐 산 자는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길이 죽음의 길이다. 강건하여 80을 산다 하여도 영원에 비하면 얼마나 허망한가. 더군다나 세상을 보고 나를 바로 알고 살아온 날들이 몇 날이나 되었던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인생인 것을 더 많이 더 많이 하고 끝없는 욕망의 바다를 허우적대다가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그 욕심이 결국은 사람을 병들게도 하고 죽음까지도 재촉하는 것이 아닐까. ∥「복길이의 방」 중에서

긴 세월을 살아내며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노(老) 작가의 글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바로 보게 하는 가르침을 얻는다.

작가는 한국크리스천문학상을 수상하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1년 내내 준비하는 화목들처럼, 평생을 삶의 현장에서 싸우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과정을 각자의 장르를 통하여 담아내는 작업이 문학이라면, 문학상은 그 문학의 나무가 피워낸 꽃이요, 향기일진대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진정한 문학은 역사의 증인이어야 하고 그 시대의 양심이자 파수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가장 힘없고 부족한 내게 창검보다도 위대한 펜을 들으라 하셨는지 떨리는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하지만 역사의 증인이자 시대의 양심을 충실히 써낸 작가의 글들을 보면서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작가야말로 진정한 문학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송지희(극작가)
― 2017년부터 연극 ‘심, 심한 이웃’, ‘아 부 조부’, ‘삼례, 금와의 꿈’, ‘고물은 없다’ 등을 썼다. 극단 ‘창작극회’와 ‘예술집단 얼간’ 단원이며, 전주 ‘물결서사’ 공동운영자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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