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21201]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⑥목경희, 그의 차분하고도 담담한 서사의 힘: 『우산처럼 양산처럼』을 읽고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12-01 10:25
조회
688
목경희 수필가를 알게 된 건 『우산처럼 양산처럼』(교음사·2001)을 보면서다. 낯설고 생소한 이름의 수필가를 만나게 된 행운을 마주하고 그의 약력을 들여다본다. 1927년에 완주군 동상면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교사, 수필가, 의상실 운영이라는 다채로운 이력을 가졌다. 일제강점기와 민족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답게 이력 또한 변화무쌍하다. 특히, 양재 관련 직무는 수필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아 눈길이 오래 머문다. 사뭇 그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의 삶과 문학을 더듬기 위해 그가 만든 여러 개의 지도를 만지작거린다. 그중 네 번째 수필집을 펼쳐 그가 만든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2001년도에 출간된 이 수필집은 앞서 나온 세 권의 수필집 『먹을 갈면서』, 『분홍 옷 갈아입고 꽃길을 가네』, 『길 바보의 고백』에서 엄선한 대표작을 모아 놓은 문고본으로,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 선집 139권이다. 문고본은 지하철이나 버스 칸에서 또는 직장에서 수시로 간편하게 읽으면 좋을 크기와 무게다. 그만큼 짧고 간결하기에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고 안온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준다. 그러니 문고판만큼 수필집에 어울리는 판형도 없는 듯하다.

수필선집에는 「우산처럼 양산처럼」부터 「한 여름날의 소묘」까지 3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을 주제별로 나눈다면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인연이다. 살면서 만난 다양한 인연과의 이야기는 그의 정신세계와 삶의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는 가난이다. 목경희는 질곡 같은 삶을 살았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세 번째는 가족이다. 딸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절절하게 한다. 네 번째는 터전이다. 자신이 터를 이루고 살았던 곳에 대한 애착이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감이 풍년이었던 고향 완주군 동상면 시평리. 학교에 다니고, 자식을 키우고, 양재 사업을 했던 전주. 사업이 망하고 쫓기듯 올라간 서울. 터전을 통해 겪은 이야기와 깨달음은 작가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연과 관련된 작품 중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표제작 「우산처럼 양산처럼」이다. 그는 서울에서 우연히 여고 후배를 만난다. 담소를 나누다가 그들은 서로의 처지가 비슷한 걸 알게 된다. 그들은 곧장 살림을 합친다. 그러나 겨우 1년을 함께 살다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 목경희는 어린 후배로부터 삶에는 극단이 없음을 깨닫는다. 우산이 양산이 되고 양산이 우산이 되는 것처럼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유연한 마음 자세를 갖는다면 가난이란 파도가 덮쳐 와도 이겨낼 힘이 됨을 이야기한다.

「액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작품은 액자와 그 안에 담긴 작품의 상관관계를 인간관계와 연결한 수작이다. 그는 집에 내건 액자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목경희는 액자를 내걸며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줌으로써 인생의 번뇌를 조금 덜어내기를 희망했다.

가난을 들여다볼 작품은 「영원한 나의 동반자」다. 목경희는 젊은 시절 <순미사>라는 양장점을 운영했다. 서울에서 모델을 데려와 패션쇼를 열 정도로 규모가 큰 양장점이었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했던가.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양재 사업이 망하고 만다. 그는 도망치듯 서울로 거처를 옮길 때도 미싱을 이고 지고 갔다. 다른 건 다 버려도 미싱은 버릴 수 없었다.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면서도 품에 꼭 끌어안았던 미싱. 미싱은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채우는 대상이었다. 미싱은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 그를 향해 가만히 손을 내밀어주는 동반자였다. 대상을 향한 연민과 애정, 그리고 감사함이 넘치는 그의 사고가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물건이 생각해 보게 한다.

목경희 작품에는 딸 혜신의 이야기가 많다. 부모에게 모든 자식이 그렇겠지만 큰딸 혜신은 자신의 전부였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신중한 아이인 혜신이 평탄한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병을 얻고 눕고 만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는 묵묵히 딸을 간호했다. 그는 딸이 왜 죽어가야 하는지 격양된 어조로 말하지 않았다.

작품 「뜨개질」은 죽음을 앞둔 딸이 뜨개질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딸이 병상에 누워서도 뜨개질을 멈추지 않자 뜨개질감을 빼앗는다. 하느님께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한가하게 뜨개질을 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혜신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엄마! 뜨개질은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에 불을 댕기는 작업이며 저의 목숨으로 드리는 경건하고도 행복한 저의 기도예요”라고 말했다. ∥「뜨개질」 중에서

그는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선물하신 하나님을 향해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딸과 소중한 추억을 글로 표현했다. 자식이 죽으며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묻어둔다’라는 건 어둠 속 절망이 아니라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희망과 흥분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한결 성숙해지는가 보다. 목경희는 딸과 진한 우정을 나눈 친구, 존경해 마지않던 선배 문인,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백하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때론 절망으로 때론 의연함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해탈의 자세를 보인다. 터지려는 울음을 입술 깨물어 참아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는 죽음 앞에서 한결 성숙한 인간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목경희의 문학은 그가 자란 고장과 닮았다. 그가 살던 곳은 지천으로 감이 열리는 풍요의 땅이었다. 가난했지만 자연이 준 혜택으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의 문학은 아픈 중에도 아픔을 노래하지 않고 절망을 기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는 넉넉한 가슴으로 어려운 가운데도 선뜻 옆자리를 내주고 함께 기도하며 고통을 내 것처럼 느꼈다. 「아버지」나 「송편」 같은 작품은 그의 문학적 근간이 모두 가족의 사랑으로 빚어진 선물이 아닐까 싶다.

「먹을 갈면서」는 자신의 삶을 고장 난 차에 비유했다. 자주 고장 나는 차로 인해 그는 어지간히 마음을 다쳤으리라. 고칠 자신도 없고 고치려 드니 막막했을 것이다. 그는 이 막막한 시간과 터져버릴 것 같은 답답한 가슴을 먹을 갈면서 정화하려 노력했다.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흔들렸을 때 마냥 떠내려가는 쭉정이는 되지 않기 위해 먹을 갈며 이를 악물지 않았을까?

그의 이야기에는 불쌍하다거나 가련하다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그는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였고 놓여 봤기에 남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상황을 묵묵히 전하면서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달리 바꾸려는 의지로 사용된다.

목경희 수필은 서민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문학인이 갖춰야 할 자세가 함께 담겨 있다. 그에게 삶은 파도와 같아 거부할 수 없는 바다의 운명이었다. 그러면서도 거친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문학의 순기능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문학은 삶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한 인간의 눈과 글을 통해 진정한 인생철학을 생각해볼 수 있는 문학이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며 강요하지 않는 목경희의 수필은 시대를 초월해 내게 가만가만 속삭여준다. 힘들수록 천천히 걸으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건설할 힘을 내라고 말이다.

목경희 수필은 지역 문학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고통이 고통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희망으로 채울 것이라고 자부한다.

∥글 김근혜(동화작가)
― 동화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과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다짜고짜 맹탐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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