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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20221117]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②7권의 책에 담긴 삶의 의미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11-17 11:35
조회
504
● 수필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목경희의 글쓰기는 여성 문학인이 거의 없던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1968년 전북문인협회에 가입한 뒤 그해 전북일보 ‘전북춘추’에 1년 동안 집필자로 참여했다. 이기반(1931∼2015)·최승범 시인 등의 권유가 큰 힘이었다. 두 사람과의 인연은 이듬해인 1969년 7월 창간된 전북문인협회 회원지인 『전북문학』으로 이어졌다. 그가 수필이란 이름으로 처음 글을 실은 매체가 1969년 10월 30일에 발간된 『전북문학』 제3호이다. 수록작품은 ‘산이 좋아서 나는 가끔 산을 찾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산으로 가는 마음」. 그 스스로 ‘한마디로 말해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들이다. 그러나 어린 날의 사진 속에서 철없이 유치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감미로운 추억에 빠져들 듯이 그것들을 보는 마음 또한 그렇다. 그것들은 어린 날의 내 모습처럼 미숙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요, 버릴 수 없는 나만의 얘기들이다.’라고 말하지만, 작품의 사고는 꽤 깊다. 목경희의 작품을 추천한 최승범 시인도 이 글에 대해 △사물에의 아름다운 정감 △짜임새 있는 구상 △아기자기한 표현 △폭 넓은 독서 등을 거론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수필가 목경희의 문단 활동은 활발했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전북문인협회의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정덕룡·김종명·송영상·원영애·김기선·김영철·김옥생·한대석·김순영·김학·정주환·김동필·박양훈·박동수·이국자·최증자·김희선·김태자·김경희 등과 함께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1970년 5월에는 전주유네스코협회와 공동으로 전북문인협회에서 전북 초유의 회원 ‘선자시화전’을 마련했다. 여기에서 얻은 이익금으로 최승범, 이기반, 최진성, 최기인, 목경희가 편집위원이 되어 1971년 4월 사화집 『밀림대』를 국판 295면으로 2천 부를 간행했다. 1960년대 여성 문학인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1970년대 접어들면서 원영애·김옥생·김순영·전덕기·김기선 등이 등장하며 문단은 한결 다채로워졌다. 1975년부터는 서해방송의 수필 프로그램인 <밤의 여로>에서 수필을 들려주며 청취자의 큰 호응을 얻었고 수필문학의 저변을 넓혔다.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최승범·이기반·허소라·이병훈·정렬·강인한·정주환·김동필·임동조·이범순·이귀호·정덕룡·김종명 등이다.

서울 소재 문예지를 통해야 전문수필가로 인정받던 당시 문단의 풍토에 맞춰 50세인 1976년 월간 『수필문학』에 글을 발표하며 추천의 과정을 밟았다.

● 7권의 책을 선보여

목경희는 모두 7권의 책을 남겼다. 수필집 『먹을 갈면서』(1987), 『분홍옷 갈아 입고 꽃길을 가네』(1991·교음사), 『길 바보의 고백』(1997·교음사), 『새끼손가락』(2003·교음사), 『그리움의 나라』(2006·교음사)와 수필선집 『우산처럼 양산처럼』(2001·교음사), 서간집 『숲의 향연』(2008·교음사)이다.

첫 번째 수필집은 40·50대인 70년대의 고단한 삶을 담은 『먹을 갈면서』다. 1987년 회갑기념으로 큰아들이 내준 이 수필집은 할 말 다 못하고 가려서 한 탓에 오히려 행간의 의미가 깊었다. 출판사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회갑기념’이라고만 쓰여 있다.

두 번째 수필집 『분홍옷 갈아 입고 꽃길을 가네』는 80년대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과 함께 살아온 영혼의 신음을 그렸다.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딸과 주고받은 편지와 간병일기 등 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수필이다.

전주여고 교사였던 맏딸(박혜신)은 남편과 함께 일본 문부성의 지원을 받아 전액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4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남은 것은 행복 시작이 아닌 암이었다. 엄마의 간호를 받던 딸은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3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위에게 딸의 사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편지까지 모든 유품을 받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5년에 걸쳐 딸과 함께 썼던 간병기를 펴냈다.

“모녀산문집은 딸의 생명으로 만든 글이죠.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지금껏 제가 펜을 놓지 않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딸과 함께하며 겪었던 가슴속 한을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이 감명했고, 독자들과 나눈 힘은 그가 계속 글을 써나가는 커다란 동력이 됐다. 글에 대한 더 큰 욕망도 갖게 했다.

첫 수필집 이후 11년 뒤인 1997년에 세 번째 수필집 『길 바보의 고백』을 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원래 길 바보였기에 잃었다 다시 찾는 그 길이 늘 소중했고 새로워서 그 길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면서 ‘생명을 머금은 작은 물방울로 다시 나서 깊고 넓고 장엄한 생의 바다에 던져져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수필가의 길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한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써야만 하지? 하고 수도 없이 물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는 왜 숨을 쉬는가?’라는 어리석은 질문과도 같았습니다. 글은 곧 저의 호흡이며 삶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지고지순을 지향하고픈 비전이 있고, 거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노래할 수 있는 그리움이 있고, 거기에는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고 나를 볼 수 있는 창이 있기에 저는 다시 산다 해도 이 길을 갈 것입니다.”

2001년에 낸 네 번째 수필집 『우산처럼 양산처럼』은 ‘수필문학사’가 기획한 대표작선집이다.

“문학의 길, 그 길은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절망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고희의 고개를 넘으면서 조금씩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산보다도 높은 문학이라는 산맥 앞에 서 있는 개미보다도 작은 나의 존재를 보았다. 그러나 내 사전에 절망은 없다.”

다섯 번째 수필집 『새끼손가락』은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은 삶의 추억들을 정겹게 담았다. 어린 시절 올기쌀에 얽힌 추억과 60·70년대 양장점 순미사·경희빌딩(전주 중앙동)을 운영했던 당시의 일화, 신석정 시인으로부터 설주(雪注)라는 호를 얻고도 써보지 못한 사연, 변산반도 하섬에 얽힌 이야기, 전주여고 동창생(16회)·전북문인협회 사람들 등 50개의 단상을 ‘새끼 손가락’, ‘추억의 머플러’, ‘복길이의 방’, ‘겨울 나그네’, ‘마이산 가는 길’ 등 5개 분야로 나눠 실었다. 각각의 글은 작가의 삶의 단편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교훈들을 일깨운다. 때로는 씀씀이가 큰 현대인을 지적하고 물질 만능주의로 변해 버린 청소년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여섯 번째 수필집 『그리움의 나라』는 흙내음 가득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곳에서 부모·형제와 함께했던 시간,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유년의 아련함이 고해성사처럼 꾸밈없이 담겨 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천둥벌거숭이처럼 무딘 펜 한 자루 고쳐잡고 찾아 나선 그곳은 터만 남은 채 말이 없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만 옛 얘기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목경희는 한 줄을 쓰더라도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뻔히 아는 것이어도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 성격 탓에 지금은 사라진 고향, 완주군 동상면 시평리를 여러 차례 더듬었다. 고향의 아련한 풍경. 차라리 눈을 꼭 감으니 오랜 세월 기억 속에만 묻어 두었던 그의 고향과 유년은 하나도 늙지 않고 도리어 추억의 고운 옷 갈아입고 다투어 그를 맞아 주었다.

“왜 늦었느냐고 나무라지도 않고 탕자처럼 돌아온 나를 추억은 온통 솜이불같은 그리움으로 감싸주었습니다. 내가 자란 고향 어느 하루도 잊은 적이 없고 잊을 수도 없는데 그런 고향과 나 사이에는 항상 그 험한 밤팃재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땀과 눈물과 한이 서린 밤팃재, 항상 어머니의 손을 놓고 울도 넘던 밤팃재, 우리 가족들이 절대로 넘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밤팃재를 나는 다시는 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80년을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 험한 인생의 고개를 수없이 넘다 보니 밤팃재를 향한 푸념은 한낱 어린아이의 응석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든이 넘어 꺼내놓은 이야기들이 무척 죄스럽다면서 이 수필집에 인생의 여러 고개를 넘어온 자신의 인생을 ‘벗겼다’라고 표현했다.

“어느덧 인생의 80 고갯마루에 섰습니다. 서툴게 살아온 인생인데도 살아온 날들 모두가 그립습니다. 그 그리움을 나누고 싶어 연필을 꼭꼭 찍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맘으로 썼습니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우리 엄마 아빠를 너무 발가벗겨 놓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조악했지만, 그때의 삶이 더 그리워요. 돌아보니 전부 그리움입니다.”

인생의 굴곡을 건너온 세월의 흔적들. 1926년생이 살아온 시대는 벗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완주군 동상면을 첩첩 두른 산과 골짜기에서 기어 나오고 싶었던 절박한 마음과 밤팃재에 어린 동생을 묻던 날의 먹먹함, 정신대를 피해 서둘러 치른 약혼….

“나 또한 후세들에게는 고향일진대 그들에게 그리움으로 읽힐 멋진 글 한 편 써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참으로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이번에 절절히 깨달았어요. 능력의 한계 앞에서 절망하면서도 오늘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수필은 그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나타내는 문학이기에 책갈피에 깃든 고뇌는 더 깊었고, 지난 삶을 간절하게 안아주었기에 글은 더 순해졌다.

이 수필집은 한국수필문학가협회와 월간 「수필문학」이 주관하는 ‘제16회 수필문학상’을 안겼다.

서간집 『숲의 향연』은 살아온 여정을 갈무리한 기억의 정수다. 서랍을 정리하다 3천여 통이나 되는 편지 묶음을 발견하면서 서간집 출간을 떠올렸고, 책을 준비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다.

책엔 지금까지 출간했던 수필집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지인들과 서신으로 나눈 다감한 흔적들이 빛바랜 기억으로 걸려 있다. 버거웠던 시절이 담담하게 추억으로 아로새겨졌는가 하면, 신석정(1907∼1974)·이영도(1916∼1976)·장만영(1914∼1975) 등 잊지 못할 지인들과의 기억도 담겼다. 특히, 이영도는 그에게 각별한 존재다. 평생 트레머리에 흰 무명옷만 입고 살던 그에게 밤색 비로드(우단)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좋아하면서 늘 입으셨던 기억이 선하다고 떠올렸다.

젊을 때부터 전국을 다니며 차곡차곡 모았던 서화도 책에 담겼다. 그래서 표지엔 다시 태어나도 대나무만 그리고 싶다는 김화래 화백의 작품이 실렸다. ‘난정’(蘭汀)이라는 호를 지어준 강암 송성용(1913∼1999) 선생의 화실을 방문해 얻은 ‘솔’(松)도 그가 아끼는 작품이다.

∥글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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