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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포스트 20220426][제5회 혼불의 메아리]수상작품 우수상(박아름)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4-26 17:27
조회
152
 

당신의 플라멩코는 무엇인가요

∥박아름(38·부산시 해운대구)

나에게 아버지는 짙은 안개에 뒤덮인 미지의 존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나를 떠났던 아버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나와 서른여섯 살 차이가 나는 남성이라는 것뿐. 어머니와 전혀 다른 내 피부색과 키를 통해 아버지의 외모를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마흔이 된 딸에게 23년 만에 불쑥 찾아간 남훈 씨와 달리, 나의 아버지는 내가 보연과 비슷한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일하러 미국에 가신 줄 알았다. 친구들이 “너희 아빠 어디 갔어?”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미국이라고 답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통해서였다. 아버지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살고 계셨고, 직장 문제가 아니라 이혼을 하셨기 때문에 떨어져 있게 된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버지는 애초에 나에게 돌아올 일이 없으셨다는 말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원래도 없었지만 이제 진짜 없는 존재가 됐다. 곁에만 없을 뿐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계실 거라 믿어왔던 아버지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그리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런 추억도 없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는 없다. 어릴 때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갈망도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그리워할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나는 잠시 요동치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아버지에 관한 생각을 지워나갔다. 어차피 잊기 힘든 애틋한 추억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의외로 오래지 않아 아버지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버지를 떠올리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왜 나를 찾지 않으셨는지 궁금했는데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를 떠나셨을 때의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아버지를 나와 동등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됐을 무렵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만났다.

소설은 반평생을 굴착기 기사로 일하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온 예순일곱의 남훈 씨가 그동안 미처 돌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처럼 비교적 간단하고 소박한 목표도 있지만 ‘외국어 배우기’나 ‘플라멩코 배우기’처럼 큰 노력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가장의 역할에 몰두한 사이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든 남훈 씨가 흐릿해진 기억력으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노쇠한 몸으로 낯선 춤을 익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하고 딸 보연을 되찾는 일이다.

마흔한 살에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써 내려간 ‘청춘일지’ 속 과제를 실행해가는 과정에서 남훈 씨는 지난날 자신의 삶이 그리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을 힘껏 응원해주는 이들을 만난다. 굴착기를 빌려 간 늙다리 청년은 남훈 씨가 까다로웠던 이유를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며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딸 보연에게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음을 일깨워 준다.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는 그 빚을 청구할지 말지, 그리고 언제 어떤 방법으로 청구할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딸의 몫이라며 남훈 씨가 딸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플라멩코 강사는 남훈 씨에게 춤 실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밝고 건강한 마음가짐을 함께 선사하며 플라멩코를 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 강조한다. 이는 결코 혼자서는 출 수 없는 춤인 플라멩코가 타인과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 스텝을 밟는 과정에서 남훈 씨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함께 익히고, 이러한 자세는 딸 보연에게 그의 진심이 가닿도록 돕는다.

아버지의 플라멩코는 무엇이었을까. 주인공 남훈 씨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당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은 채 살다 가시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의 버킷리스트에 나는 정말 없었을까. 아니면, 있었지만 차마 남훈 씨 같은 용기를 내지 못하셨을 뿐일까. 아버지는 그동안 어떤 삶을 사셨던 걸까…. 떠올리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그리고 한없이 허탈해지고야 마는 마음에 애써 외면해왔던 생각이다. 비록 애틋한 추억을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늘 어김없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홀로 나를 기르시느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신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어머니는 내가 침울해 있을 때면 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며 마음 아파하곤 하셨기 때문에 매사 밝은 척하지만 나도 가끔은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게도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어린 시절 결손가정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해맑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지 않았을까. 성격 형성에 가정환경과 성장 과정이 절대적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TV를 통해 흘러나올 때면 내가 어딘가 결핍된, 온전치 못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성추행을 당해 연기를 그만뒀다는 보연에게 남훈 씨가 “그래, 잘했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아픔을 겪고 회사를 떠난 후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내게 힘이 되어 주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스스로를 향한 고민으로 가득 차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정신적 여력이 없던 내게, 소설은 나를 넘어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리게 했다. 노년기에 접어든 남훈 씨의 인생 버킷리스트를 통해, 우리가 나이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희망을 안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와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훈 씨가 딸 보연을 찾아가기에 앞서, 딸이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지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대목에서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던 아버지의 처지를 헤아렸고, 이제야 딸을 찾아 미안하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에서는 어쩌면 미안한 마음에 나를 찾을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했다. 어머니와 다투기라도 하시면 사과의 말을 꺼내기가 멋쩍어 공연히 엉뚱한 얘기만 꺼내셨다던 아버지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해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이 없었다며 어머니께서 아버지 흉을 보실 때면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면서도 그 이유를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는데 보연을 통해 비로소 그 감정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내 반쪽은 아빠한테서 왔잖아. 엄마가 아빠를 욕할 때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엄마는 내 맘을 이해 못 했어. 그냥 내가 아빠를 더 좋아해서 아빠 흉을 못 보게 하는 줄만 알더라. 사실은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건데… 그래서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아빠 생각을 했어. 엄마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지.”(p.248)

가족이란 참으로 질기고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정적 교류는커녕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가 나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곱씹을수록 오묘하다. 딸을 찾아간 남훈 씨의 용기에 보연이 마침내 응했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리 만족이었을까. 나는 부녀의 상봉을 전후로 소설 속에 급격히 빠져들었는데 누구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얼핏 생각했을 때 나와 비슷한 입장인 보연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책을 덮은 후 더욱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남훈 씨였다. 딸을 향한 그의 생각과 감정이 내내 마음을 맴돌았다. 작가는 이렇게 서로 다른 처지를 이해하고 보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누구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조명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히는 지점이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행간을 통해 전해진다.

스페인어와 플라멩코는 남훈 씨가 자신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는 스페인어를 익히며 자신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플라멩코를 추며 삶의 애환과 숱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운다. 아버지에게 외면받고 살아온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는 남훈 씨가 보연에게 해야 할, 어쩌면 자신이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을 말을 가르쳐준다.

“스페인어는 ‘주어-동사-목적어’ 순으로 말합니다. 내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오늘에야 너를 찾았네. 미안하다.’ 이게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 오늘에야 너를 찾아서.’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예요.”(p. 153)​

이전과는 다른 문법으로 살게 된 남훈 씨는 굴착기로 공간을 만들듯 자신이 바로 설 자리를 다졌고, 이를 기반으로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의 관성에 지배되어 있었다면 그는 보연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두 매개체는 남훈 씨의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동시에 그를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스스로를 긍정하고 상대를 끌어안는 포용력을 지니게 된 남훈 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보연에게도 희망을 전한다. 성추행을 당해 연기를 그만둔 딸에게 남훈 씨가 용기를 북돋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한 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기억하세요. 새로운 언어 형식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듭니다.”(p. 56)

“배우기 시작했어. 아빠의 언어.”(p. 267)

작품 속에서 언어의 기능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가 달라지면 마음과 태도가 달라지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역설하는 작가의 언어관에 따르면 보연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일은 곧 남훈 씨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훈 씨가 먼저 내민 손을 보연은 그렇게 따스하게 맞잡는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이해의 발걸음은 가족의 회복을 이끈다.

책을 덮고 작가의 의도를 헤아려봤다. 작가는 왜 남훈 씨가 도전하는 분야를 글도, 그림도 아닌 춤으로 설정했을까. 춤은 추고 있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시간적 예술이다. 춤의 시제는 언제나 바로 이 순간, 현재다. 남훈 씨가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해야 하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저당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사실 우리는 모두 바로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 아니던가. 현재를 좀 더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그 ‘수많은 오늘’이 모여 우리의 삶을 반짝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춤 가운데서도 플라멩코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춤의 무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중장년 남성의 발레 도전기를 그린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적이 있다. 도전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메시지는 유사하지만 두 작품에 등장하는 춤의 속성은 사뭇 다르다. 격식을 중시하며 한정된 관객 앞에서만 공연하는 발레와 달리 플라멩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집시들의 자유로운 정신이 묻어나는 춤으로, 광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특성을 갖는다. 낯선 이국땅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행위는 고지식했던 남훈 씨의 본래 모습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그는 스페인 광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며 상대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다. 플라멩코는 반평생 굴착기를 몰던 고집스러운 노인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 순간 남훈 씨를 가장 남훈 씨답게 만든다.

“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p. 105)

플라멩코는 남훈 씨가 청춘일지에 써 내려간 다짐대로 그를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 플라멩코 강사는 남훈 씨의 춤 실력뿐만 아니라 마음가짐도 엄격히 관리한다. 플라멩코라는 생소한 춤을 추는 동안 남훈 씨는 새로운 내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광장에서 집시의 춤을 추며 그는 한층 자유로워졌고 자신이 딛고 설 자리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플라멩코는 그렇게 남훈 씨를 한 단계 성장시킨다.

우리는 사람이 성장하는 시기를 신체 발달이 진행되는 유아기에서 청소년기까지의 기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격과 생각의 성장기는 특정 시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춤 연습을 하다 무릎에 물이 차 몇 달을 고생하면서도 플라멩코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남훈 씨의 모습은 비록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노쇠해져도 열정과 의지만은 조금도 늙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남훈 씨의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삶의 매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해 나가는 남훈 씨의 행보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남훈 씨의 개인적 성장과 가족애의 회복이 갈등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작품에서 개인의 성장이나 성공이 타인과의 우호적 관계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는 두 가치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선순환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남훈 씨가 원하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보연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를 토대로 청춘일지 속 다짐이 실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보연에게 아버지를 돌려주고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남훈 씨가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간 서로 다른 입장에 놓여 있던 인물들이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작품은 따스한 빛깔로 물든다. 남훈 씨의 여정을 함께하며 독자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며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이 우리 인생에 온기를 더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임을 작품을 통해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사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얼마간 쓸쓸하고 외롭기도 했다. 나에겐 남훈 씨 같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마음을 쿡쿡 찔렀다. ‘내게도 삶의 여정을 함께할 아버지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달갑지 않은 감정이 샘솟아 마음이 허전해지던 무렵, 문득 저자에게 눈길이 갔다. 어떤 삶의 궤적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런 소설을 썼을까. 자신을 보연에게 투영시켜 써 내려간 자전적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읽던 중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을 확인하고 한동안 충격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어버렸어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또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오래 고민하면서 살다가 소설을 통해서나마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어떤 이유로 저처럼 아버지를 잃어버린 분들이 계신다면 이 책을 통해서나마 작은 위로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 작가 인터뷰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작품을 통해 위로하고자 한 작가의 깊고 세심한 마음이 전해졌다. 아버지를 잃은 모든 분께 아버지를 상상할 기회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다가도 가끔 그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어두운 감정이 뒤섞이곤 했는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는 그 아픔을 원동력으로 소설을 써 독자들의 마음을 토닥이고 있었다는 게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이 책은 내게도 청춘일지를 쓸 것을 권하고 있다. 남훈 씨가 그랬듯 “어제의 나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태어났다.”라고 시작하는 일지를 써 내려가라고,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속삭이고 있다.

내게 가족은 곧 결핍이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은 나를 ‘결손’가정 학생으로 규정했고,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무언가 결핍된 존재라고 학습하며 성장했다. 가정환경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을 배웠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안고도 타인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작가를 보며 나는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상한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자녀’로 표현되는 이상적인 가족상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각기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저마다 다른 사랑과 행복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채울 수 있는 게 아닐까. 각자의 삶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게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아버지를 상상할 기회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작가처럼, 너무 머지않은 언젠가 나 또한 비슷한 환경의 누군가에게 미약하게나마 따스함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문학에 영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플라멩코가 남훈 씨에게 낯선 춤이었듯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학창 시절 문학작품을 접할 때면 너무 어려워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문학의 가치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다. 남훈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아버지를 상상하며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볼 수 있었고, 내 삶에서 오랫동안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영역을 상상으로나마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참 많이 울고 웃으며 마음껏 행복했다. 관심 없다며 애써 외면해 왔지만, 사실은 내 전부였던 가족을 온전히 되찾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버지에게도 가족을 꿈꾸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까. 상상으로나마 외로움을 채워 줄 아버지만의 소설이 있었을까. 아버지에게도 분명 빛나는 청춘의 꿈이 있으셨을 테다. 남훈 씨처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하며 희망을 품고 그려나간 미래가 있으셨을 것이다. 존경받는 근사한 노인이 되고 싶으셨을 것이고, 은퇴 후 멋진 옷을 차려입은 신사가 되어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꿈을 꾸셨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를 찾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만일 아버지께서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이 책을 읽으셨다면 한 번쯤 나를 만나러 오실 용기를 내실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수많은 ‘어쩌면’과 ‘만일’ 속에서 짙은 안개 너머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나갔다.

사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 속에서 그려낸 아버지는 실제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나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크게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부디 아버지께도 남훈 씨처럼 자신만의 플라멩코가 있으셨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된 삶을 위로해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무언가가 있으셨기를, 그래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이 너무 쓸쓸하지는 않으셨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가 왜 나를 찾지 않았는지 원망만 하던 내가 이제는 왜 그동안 먼저 아버지를 찾아 나서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먼 훗날 아버지를 만나면 나는 남훈 씨가 그랬듯 스페인 사람처럼 ‘주어-동사-목적어’ 순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제가 죄송해요. 이제야 아버지를 찾아서….”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여쭤보고 싶다. 당신의 플라멩코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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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신문 20220526]당진나루ㆍ수필문학회, 글에 대한 열정을 깨우다
최명희문학관 | 2022.05.26 | 추천 0 | 조회 131
최명희문학관 2022.05.26 0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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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연합신문 20220525]총상금 800만원 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111
최명희문학관 2022.05.25 0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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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신문 20220525]가람 이병기 청년 시문학상, 최명희 청년 소설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101
최명희문학관 2022.05.25 0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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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전북 20220525]총 상금 800만원 규모 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64
최명희문학관 2022.05.25 0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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