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포스트 20220426][제5회 혼불의 메아리]수상작품 우수상(변가영)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04-26 17:26
조회
138
 

‘아버지’란 이름의 서사와 화해

∥변가영(53·서울시 송파구)

 

○ 시작하며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대부분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다. 일테면 길가에 밟히는 잡초거나 흔한 계절 꽃 같은 것들이 그랬다. 자세히 보면 뻔한 것은 없었다. 잡초의 이파리는 비슷한 듯 모두 달랐고 분홍인 줄 알았던 꽃잎도 분홍보다 여리거나 분홍과 붉음이 섞인 색이거나 했다. 때로 늘 뻔하게 그 자리에 있는 멈춰 있던 존재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납작 엎드려 죽어가고 있기도 했다. 세상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나름의 서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부모도 그랬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엔, 나는 내 부모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오직 그들이 내 부모라는 사실만이 내가 아는 전부였고 변할 수 없는 진리였다. 가끔 부모님도 당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긴 했다. 경험담이거나 영웅담 같은 이야기들, 조금쯤 미화되거나 많이 왜곡된 기억들은 낡은 레코드판이 지직대는 소리처럼 허랑했다. 그러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자라는 어느 순간에, “엄마도 그땐 그랬어.” 하고 말을 건네보니 알 것 같았다. 내 부모도 한때는 작은 아이였고 쓸모없는 행동을 저질렀고 실패했고 불안했으며 고독하고 외로웠단 사실을, 그분들이 처음부터 내 부모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나 또한 오랜 세월을 통과하면서 제법 성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책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은퇴를 결심한 주인공 남훈 씨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실천해내며 주변인들과 화해하거나 결속해나가는 이야기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또 한 남자로서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해결해야 할 한 인간으로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현실의 행복에 안주하며 과거의 실수를 모른 척할 수도 있었지만, 젊었던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일들을 위해 끝내 애쓰는 그의 모습은 사뭇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주인공 남훈 씨의 행적을 뒤따르며 내가 몰랐던 부모의 모습에 관해 상상해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끝내 움켜쥐고 싶었던 희망이랄까, 자식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아픈 과거라든가 풀어내지 못한 숙제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한 번도 부모에게 그런 걸 물어본 적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젠 너무 늦어버렸단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지난 일을 기억하기엔 너무 노쇠해버린 까닭이었다.

○ 남훈 씨의 <청년일지>

소설의 발단은 이렇다. 굴착기를 몰던 남훈 씨는 67세가 되자 은퇴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굴착기를 판매하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굴착기를 사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공사판에서 일하겠다는 늙다리 청년에게 굴착기를 넘기지만, 판매가 아니라 렌털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청년일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41세였던 때 기록해둔 일기장이었다. 간경화로 죽음의 목전까지 다녀왔던 그때였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던 그는 남은 생에 꼭 이루고픈 목표들을 그곳에 적어두었다. 남훈 씨는 그 일곱 가지 과제를 하나하나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에게도 일기장이며 메모해둔 노트가 있다. 남훈 씨에겐 <청년일지>뿐이지만 내 아버지에겐 꽤나 많은 양의 기록물들이 있다. 아마도 쌓아두면 173.5센티의 아버지 키와 맞먹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활자 중독일 만큼 늘 책을 읽었고 노트에 기록하는 일도 열심히 하셨다. 그러나 기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느 여성분에게 호감이 있단 걸 들킨 것도, 바로 그 아버지의 습관적인 기록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수첩에서 그 여성분을 향한 아버지의 연정을 읽어버린 엄마는 수건으로 이마를 동여맸다. 엄마가 그렇게 앓아누우신 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의 수첩을 증오했다. 남훈 씨의 딸 선아가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된 후 냉랭한 태도를 보였듯이 우리 형제들도 아버지를 역병처럼 경계하며 피했다. 부엌 식탁에서 혼자 라면을 드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가족 모두에게 배신자였다. 엄마에게 사죄는커녕 변명만 일삼는 아버지는 뻔뻔하고 부도덕해 보였다. 그러나 과연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 시절의 아버지는 기껏해야 오십 대 후반이었다. 내겐 그저 아버지였을 뿐이지만 아버지는 단지 ‘아버지’가 아니었다. 자식들이 어느새 성인이 돼서 저마다의 날개를 달았던 시기였다. 자식들은 더는 아버지의 위계에 짓눌리거나 순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당신이 부여잡던 가장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허무했고 외로웠을 것이다. 마구 달려오던 길에서 불쑥 멈춰 섰을 때 가속이 붙어버린 몸을 제어하기 힘든 것처럼. 가족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못할 때 마음이 통하는 이성이란 얼마나 따듯한 위로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그 여성분의 만남을 통해 행복했을 것이다.

1·4 후퇴 때 할아버지와 단둘이 월남했던 아버지에겐 당신의 엄마도 형제도 곁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부모도 없이 혼자서 일궈낸 가정은 안락하기도 했겠지만 도망치고 싶은 굴레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이제야 안다. 그래서 한 여성에게 기댔던 내 나이 즈음의 아버지가 나는 안쓰럽다. 이제는 노년의 끝자락에 매달려 아슬아슬 견뎌내는 아버지를 마주하면, 그 시절 가족에게 내쳐진 아버지의 쓸쓸함과 서러움이 묵직한 무게로 내 가슴에 얹히곤 한다.

사정은 조금 달랐지만 남훈 씨에게 전처 소생의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둘째 딸 선아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아가 아버지 남훈 씨를 이해하고 아버지의 외로움에 공감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남훈 씨는 ‘제3막’이라는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다. 그의 첫 번째 과제는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다. 간단하고 별것 아닌 각오지만 실제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남훈 씨는 먼저 화낼 뻔한 순간마다 잘 참아내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 두 번째는 근사한 노인 되기. 그는 백화점에서 고급스러운 속옷을 사고 상점에 가서 멋진 정장을 맞춘다. 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좀 식상한 과제였다. 살다 보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거나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뽐내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째 과제, ‘외국어 배우고 해외 여행하기’를 위해 남훈 씨가 스페인어를 선택한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스페인어는 흔한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훈 씨가 외국어를 선택하는 중요한 조건은, 동사부터 시작하는 어순의 언어였다. ‘더 이상 에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말 어순이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동사가 뒤에 오는 우리말은 상대방의 눈치를 보거나 말끝을 흐리기에 용이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보다 다수의 눈치를 보며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비겁해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서 운신이 자유로운 개인에게도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삶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남훈 씨는 에두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의 남훈 씨는 자신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제를 실천하면서,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남훈 씨가 스페인어를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피해 의식에 빠져 무기력했던 지난 삶을 청산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이다. 스페인어 학원을 찾아간 남훈 씨에게 강사는 “새로운 언어형식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남훈 씨가 원하는 새로운 관계란 그의 딸 보연과의 관계이기도 했다. 첫 결혼에서 태어난 딸 보연은, 남훈 씨가 이혼한 후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첫 아이다. 그는 보연이와 만나기로 했다. 전 부인과 이혼할 때 여섯 살이던 보연은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남훈 씨는 보연이가 열일곱이던 때 딱 한 번 만난 후로는 만나지 못했다. 오랜 이별이었다. 그러나 보연을 향한 부채감과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그는 결심만큼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대신에 그는 플라멩코를 배우기 시작한다. 네 번째 과제인 건강한 체력 키우기 실천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모든 과제가 난제였다. 남훈 씨는 무릎에 물이 차고 부정맥까지 생겨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플라멩코와 스페인어 강사 그리고 늙다리 청년)의 따듯한 조언에 희망을 품고 다시 도전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다섯 번째, ‘죽은 후 묻힐 곳’을 찾아 수목장을 선택하고 여섯 번째 과제인 ‘자서전 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훈 씨의 자서전을 읽게 될 독자는 그의 아내와 딸 선아뿐이 아니었다. 그는 첫딸 보연에게도 꼭 읽히고 싶었다. 자신의 생애를 힘겹게 기록하면서, 남훈 씨는 ‘보연이를 만나 사과하기’라는 마지막 목표에 다가선다.

○ 부채감이 있다고 아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을 중간쯤 읽을 때까지,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서사와 쉽게만 읽히는 밋밋한 문체가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주인공 남훈 씨가 보연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부분부터 조금씩 소설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보연이 혹시 돈을 요구할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남훈 씨는 뻔뻔해 보이기도 했다. 또한, 보연이가 (재혼한 아내가 낳은 딸인) 선아를 질투하자 보연에게 화를 내는 남훈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건 내가 아는 부모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보연은 전처에게 맡기고 방치했던 자식이 아니던가. 눈물로 사죄해도 못마땅할 마당에 자신이 가진 걸 뺏길까 걱정하다니, 남훈 씨는 천륜마저 이해타산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보연이가 불쑥 나타난 제 아버지, 남훈 씨를 차갑게 외면했을 때, 그가 상처받은 듯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연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남훈 씨가 보연을 잊었던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비로서 제 딸을 돌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니까. 느닷없이 아비입네, 하고 나타난 사내에게 좋아라 할 자식이 어디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상처받을 사람은 남훈 씨가 아니라 딸 보연이가 확실했다.

“부채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자연히 아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구나.”

남훈 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늙다리 청년이 말한 것처럼 ‘궂은 날도 좋은 날도 함께 있어’야 아비이고 가족일 수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 핏줄보다 더 큰 결속력을 갖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훈 씨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내 아버지의 이기적이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우리 형제들을 아버지는 창피해하셨다. 자식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보다는 당신의 사회적 체면을 우선하셨던 것이었다. 돈을 벌어 온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집안일을 도운 적도 없었다. 부엌엔 발길도 하지 않으셨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것도, 무거운 물건을 옮겨 놓는 것도 모두 엄마 몫이었다. 아버지가 할 줄 아시는 건, 엄마가 정성껏 차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을 드시는 것이었다. 스스로 밥을 푸거나 숟가락 한번 식탁에 올려놓으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식탁의 중앙에 앉아서 식사하시고 당신의 의자로 돌아가 책을 볼 뿐이었다. 은퇴 후에도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으셨다. 자식이 불편하거나 힘들어해도 당신이 필요한 일이면 당연하다는 듯 자식에게 요구하시곤 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 혀를 내둘렀지만, 노인이 된 아버지의 성격이 바뀔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남훈 씨의 이기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통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내 아버지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란 존재도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찾아간 남훈 씨 면전에서 보연은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보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하철로 향했던 발길을 되돌려 보연의 집 앞까지 돌아온 남훈 씨는, 우체통을 뒤져서 고지서에 메모를 남겼던 것이다. 그건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의 조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죠? 스페인어는 주어-동사-목적어 순으로 말합니다. ‘내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오늘에야 너를 찾았네. 미안하다.’ 이게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 오늘에야 너를 찾아서.’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예요.”

남훈 씨의 메모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보연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진실한 마음은 어떤 표현을 통해서든 전달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건 틀린 말인 것 같다. 진실한 마음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 치열한 고민과 간절한 성의를 다해 전달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남훈 씨를 통해 절실하게 깨달았다.

○ 보연과의 화해

남훈 씨가 스페인 여행을 보연과 함께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궂은 날과 좋은 날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잠시라도 함께 지내며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필요했다. 폭우에 쓸려버린 징검다리에 돌덩이를 옮겨 놓듯, 남훈 씨와 보연이 서로를 연결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헤어져 살아온 시간만큼 풀어야 할 오해도 갈등도 적지 않았다. 일테면 스페인 ‘산 미겔’ 시장에서 보연이 터뜨린 울음도 그런 장면이었다. 자기가 따라가는지 아랑곳없이 골목으로 사라진 남훈 씨의 뒷모습을 보며 보연은 아버지가 자신을 또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낸 남훈 씨를 향해 보연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뭐 하러 왔어? 소리치는 보연에게, 남훈 씨는 “뭐 하러 왔냐니, 네가 없어졌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갑작스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 보연의 울분은 단지 스페인 시장에서 벌어진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오랜 시간, 열일곱에 자신을 찾아와 돈가스를 사주고 십만 원을 손에 쥐어준 채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향한 질타와 원망이었다.

보연의 질문에 대한 남훈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가 없어졌으니까.’ 그렇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부모에게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남훈 씨의 대답에 순간 울컥했다. 그토록 당연하고 뻔한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하는 아비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기막히고 서글픈 심정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없어지면 찾아내고 함께 어깨를 겯고 살아내는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사실, 스페인에서 보연이를 놓쳤던 이유는 남훈 씨가 딴생각에 빠진 탓이었다. 다음에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 오게 될 계획이나 아내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느라 보연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돌보지 못했던 딸과 여행하면서도 지금의 가족을 챙기는 남훈 씨의 마음은 복잡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연이 뒤따라오지 않는 것조차 그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보연은 자신과 함께 그 먼 곳까지 여행을 왔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아버지를 눈치챘다. 그래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내버리고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다. 한 번 버림받았던 트라우마는 보연을 공포와 절망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 부녀의 재회가 어쩌면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르겠구나 불안한 마음이었다. 모든 만남이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비록 부녀 관계일지라도 서로를 잊은 채 살아간다면 적어도 상처를 들쑤시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새로운 관계도 형성될 수 없는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여행은 성공적이었던 듯싶다. 스페인 광장에서 멋진 정장을 입은 남훈 씨가 플라멩코를 추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스페인의 햇살 아래서 쨍한 얼굴을 한 보연이가 부서져라 웃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스페인 여행에서 그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남훈 씨는 다시 굴착기 일을 시작한다. 그에겐 그 일이 천직이었다. 자식을 가르치고 가족을 먹이고 집을 사게 해준 천직. 남훈 씨는 굴착기를 다시 운전하며 뿌듯함과 행복을 맛본다. 그러던 어느 날, 보연이에게서 앨범 하나가 택배로 배송된다. 앨범 안에는 남훈 씨가 굴착기로 일했던 공터의 사진이 잔뜩 담겨 있었다. 남훈 씨가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보연이가 직접 찍은 것도 있었다. 보연이는 남훈 씨가 공사한 장소를 찾아가서 제 아비의 흔적을 확인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노동으로 일궈낸 현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보연은 아버지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아버지도 건축 일을 하셨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감독했던 건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콘크리트 더미를 오갔을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작업이 끝난 후 얼큰하게 한잔 걸친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서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한때 우리의 우상이었고 기둥이었던 젊었던 아버지. 우리 형제들은 그 시절 아버지가 흘린 땀을 먹고 자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는 건축 일이 천직은 아니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딸린 자식들을 거두느라 꿈을 이루지 못했다. ‘언젠간’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소망만 간직한 채 세월이 흘렀다. 보연이는 “‘언젠가’라는 건 비겁하다.”고 말했지만 내 아버지에겐 ‘언젠가’라는 그 말 자체가 희망이었을 것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라는 희망이 때론 살아갈 힘을 주는 법이니까. 그러나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고 아버지를 만나기로 결심한 보연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연은 남훈 씨에게 성추행 때문에 배우가 되려는 꿈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성추행을 참아낸 친구는 결국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남훈 씨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했다는 애는, 참 잘됐다. 그러나 네가 안 참은 거는, 그것도 참 잘한 거야.”

그렇다. ‘언젠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나의 아버지도, ‘언젠가’는 없다던 보연도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삶의 길을 선택하는 누군가에게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 ‘세상에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 아버지들도 많은’ 것이다

분명 남훈 씨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부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서 있는 위치가 그의 가치관을 규정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실존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또 적응되는 법이었다. 함께 지내지 못했던 수십 년의 세월, 생존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시간은 생물학적 부녀의 관계도 낯설고 어색하게 만들어버렸을 터였다. 그런데도 보연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애쓰는 남훈 씨의 모습은 강물의 윤슬처럼 눈부시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이유였다. 남훈 씨가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 것도, 무릎에 물이 차도록 춤 연습에 매진한 것도, 자서전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도, 결국은 보연을 찾기 위해서였다. 과거의 실수를 묻어두거나 변명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그의 모습은 지난 잘못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열일곱에 잠깐 만났던 아버지를 34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보연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한편으론 벅차고 한편으론 씁쓸했을 보연의 마음이 소설의 경계를 넘어 내 가슴에 스며드는 듯싶었다. 그건 나와 아버지 얘기이기도 했고 아버지를 가진 모든 이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함께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있을 것이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그 아버지의 피가, 한때는 순수했고 한때는 좌절했으며 끝내는 대부분의 생을 가족 위해 살았던 그 아버지의 피가 자식의 혈관에 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훈 씨가 보연에게 “누구든 자기 몫의 운명이 있는 거겠지”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얄밉기도 했다. 딸을 버렸던 과거를 그럴듯한 말로 퉁치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은 운명주의자의 한탄이나 변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말은, 각자의 몫을 인정하고 배려하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연습하고 살아볼 수 있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은 단 한 번이고 또 첫 경험이다.

나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다정다감하지 않았고 늘 당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나는 경제적인 것 말고는 아버지에게 어떤 정서적인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아버지와의 거리감은 시간이 흐를 수로 멀어져갔다. 이 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소설 속 남훈 씨와 달리, 아버지에겐 과제를 해결할 의지도 기운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돌이키고 싶은 아쉬운 순간들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회한이 실릴 때가 아마 그런 순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는 아버지였던 사람이, 나와 다름없이 흔들리고 나약한 인간임을 깨닫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식은 아버지와 연대할 수 있다. 부모도 나처럼, 이 세상은 처음이라는 멀쩡한 진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무엇보다 따듯한 위로가 될 것이다. 마치 보연이가 ‘아버지의 언어’라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보연이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상상해봤다. 엄마를 만나서 결혼을 약속하고 월세방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젊은 아버지, 자식을 낳고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아버지, 그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무너졌을 아버지를. 중년이 된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책임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최선을 다했다는 게,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아버지의 최선에 대해 나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의 말처럼, ‘세상에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 아버지들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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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포스트 20220609]최명희문학관, 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2/20)
최명희문학관 | 2022.06.09 | 추천 0 |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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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포스트 20220609]최명희문학관, 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1/20)
최명희문학관 | 2022.06.09 | 추천 0 |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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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포스트 20220609]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8일 혼불문학기행
최명희문학관 | 2022.06.09 | 추천 0 |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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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금강일보 20220609]소설 혼불 장면을 몸으로 느낀다
최명희문학관 | 2022.06.08 | 추천 0 | 조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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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20220609]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8일 ‘한들한들 혼불 나들이’ 혼불문학기행 다녀와
최명희문학관 | 2022.06.08 | 추천 0 |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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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매일신문 20220609]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8일 혼불문학기행
최명희문학관 | 2022.06.08 | 추천 0 |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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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안 20220608]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8일 혼불문학기행 다녀와
최명희문학관 | 2022.06.08 | 추천 0 |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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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보뉴스 20220608]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혼불문학기행 성료
최명희문학관 | 2022.06.08 | 추천 0 |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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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한옥마을 2022년 6월호]최명희문학관
최명희문학관 | 2022.06.03 | 추천 0 | 조회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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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 20220530]전주 최명희 문학관으로 문학기행 다녀와
최명희문학관 | 2022.05.30 | 추천 0 |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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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신문 20220526]당진나루ㆍ수필문학회, 글에 대한 열정을 깨우다
최명희문학관 | 2022.05.26 | 추천 0 | 조회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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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연합신문 20220525]총상금 800만원 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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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신문 20220525]가람 이병기 청년 시문학상, 최명희 청년 소설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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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전북 20220525]총 상금 800만원 규모 문학상 공모
최명희문학관 | 2022.05.25 | 추천 0 |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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